ADVERTISEMENT

실망 말자 「불합격」|칠전팔기의 수재들은 말한다|고배 뒤에도 성공은 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전기중학교 합격자가 11일 밤 발표되었다. 총 7만5천2백40명이 지원한 이번 시험에서 2만8천5백6명이 합격되고 4만6천여 명이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고배는 쓰지만 그것은 분기의 계기도 된다. 지난날 낙방의 고배를 디디고 일어선 선배들의 얘기를 들어보자.

<조광하 박사의 경우>
『시험 치러 떨어지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열등 의식을 갖지 않고 분발하느냐 못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이학박사 조광하(전 성균관 대학교총장)씨는 이렇게 서두를 열었다.
정통파 교육을 받았다고 자부하는 학술원회원 조 박사는 40여년 전 함남장진에서 보통학교 4년을 마치고 함흥 고보를 치렀으나 낙방됐다. 자타가 공인하던 수재(?) 조 소년은 산수엔 만점이었으나 시골 보통학교에서 듣도 못하던 지리·이과·역사엔 보기 좋게「빵점」을 먹었던 것이다.
방에 이름이 없는 것을 보고 나오면서 함흥 고보 정문에서 『네놈의 학교엔 들어 오래도 안 들어간다』고 욕을 해 붙이고 상경-.
이과·지리·역사를 모조리 외어버리고 이듬해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이어 제일 고보 (지금의 경기중학)에 5등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부터 졸업까지 계속 전교 1등을 내놓지 않았고 일본의 제 6고교를 거쳐 동북제대 이학부 화학과를 졸업했다.
조 박사는 중학교 시험에 떨어졌던 것을 거리낌없이 공개하며 한번쯤 떨어져야 사람이 된다고도 말했다.

<김동일 박사의 경우>
「시험치를 때마다 꼭 붙는다고 자신이야 이었지..그런데 2번이나 떨어졌단 말이야. 아냐 3번씩이나 말이지」서울대학교 박사학위 1호, 초대 공과대학 학장, 학술원회원 김동일(57) 이학박사는 소탈하게 웃으며 지난날의 실패담을 털어놓았다.
평양 출신인 김 박사는 59년께인 평양 고보 4학년 때 만주 여순공대 예과를 치렀으나 보기 좋게 실패, 이듬해 평고를 졸업하자 일본좌하 고등학교를 치러 합격했다. 고등학교를 나오자 동경제대 의학부를 치러 또 떨어졌다.
그때마다 『예라 네가 견디나 내가 견디나 해보자』고 분발-그 이듬해 동경대학 공학부 응용화학과를 치러 합격했다. 당시 동경대학은 수재만 들어갈 수 있는 학교, 한국인으로서는 말할 것도 없다. 『공부를 안한 사람은 문제도 안되지만 진력하고 난 다음에야 운이 나빴다고 할밖에 없다』는 것이다.
요즘엔 입시경쟁이 너무 심해져 시험자체가 뭔지 모를 정도가 되고 있다는 김 박사는 『그때 내가 한해 쉬고 보니 건강도 훨씬 좋아지고 시력도 더 착실해지더라』고 했다. 김 박사는 『입학시험에 떨어진 학생들에겐 지금 가장 중요한 고비』라면서 『이때야말로 학부형과 수험생이 발분하라』고 당부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