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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는 원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프린스턴」대학 안에 있는「아인슈타인」 박사 집에는 매일같이 같은 시각에 국민학교 학생 하나가 들르는 것이었다. 그것을 이상스럽게 생각한 사람들은 박사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대체 그 꼬마아이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까?" 그러자 아인슈타인 박사는 아주 태연하게"그 애는 매일 나에게 「쿠키」를 갖다주고 나는 그 댓가로 그 애의 산수 숙제를 풀어준다"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세계 제일의 노 수학자가 국민학교 학생의 수학숙제를 풀어주고 있는 광경은, 또 그 댓가로 「쿠키」를 갖다주는 어린이의 모습은 한 폭의 만화를 연상케한다. 우리는 거기에서 「아인슈타인」의 따뜻한 인간미와 아이들의 순진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흐뭇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 일화를 듣고 침을 흘릴 사람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을 것 같다· "저런! 우리 나라에도 그런 친절한 교수님이 있다면! 「쿠키」 하나로 수학문제를 풀어준다니 세상에 꿈같은 이야기도 다 있구나. 만약 우리애도 그럴 수만 있다면 일류교 합격은 문제없을 텐데…" 「쿠키」가 아니라 금일봉의 봉투를 내밀고 과외공부를 시키는 한국의 학부형들은 부럽다는 듯이 탄성을 올릴 것이다.
글을 가르치는 선생이나, 시험공부를 하는 아이들이나, 그들의 눈에는 한결같이 핏발이 서 있다. 죽느냐 사느냐의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그들은 입시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학부형들은 칼이 아니라 원서 한 장을 들고 「햄리트」의 독백을 하고 있다. 「넣느냐 마느냐 이것이 문제다」 이제 한국의 어린이들은 무지개가 아니라, 입시장 어귀에 서서, 가슴을 두근거린다. 시인「워즈워드」의 제자들은 생존경쟁의 법칙을 가르친 「다윈」의 제자들이 된 것이다.
서울 시내의 전기 중학 원서를 접수하기 시작했다. 어디를 가나, 화제는 중학입시에 관한 것들이다. "당신댁 애는 어느 학교에 원서를 냈느냐"가 인사말이 되었다. 원서란 말이 꼭 원수로 들리기도 한다. 덩달아 경기가 좋은 것은 점장이집! 애들 사주를 보고 원서내는 것을 결정지어야겠다는 학부형들이 많은 까닭이다. 과연 교육은 잘 하는 것 같다. 국민학교 때 부터 그들은 생존경쟁과 투기심을 배우고 있으니, 지금 당장 사회에 나와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정말 다들 이러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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