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서 전교 1, 2등 하던 탈북 청년 국내 처음 일반직 공무원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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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이수혁

함경남도 단천이 고향인 청년. 그는 어린 시절부터 수재로 불렸다. 학창시절 내내 전교 1, 2등을 도맡아 할 정도로 성적이 좋았다. 고교시절엔 학생 회장 격인 소년단위원장과 청년동맹비서로도 활동했다.

 북한이탈주민 출신으로 전국 최초의 일반직 공무원이 된 이수혁(33)씨 얘기다. 그는 경기도가 최근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행정 8급 공무원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했다. 정부는 지난 9월 자치단체에서 북한이탈주민을 일반직 공무원으로 선발할 수 있도록 지방공무원법을 개정했다. 경기도는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북한이탈주민을 공무원으로 채용했다. 1명을 선발한 이번 시험에는 모두 48명이 응시했다. 전국 지자체에는 65명의 북한이탈주민 출신 계약직 공무원이 있지만 정규직은 이씨가 처음이다.

 이씨는 조만간 경기도 북부청사 남북교류협력과에 배치돼 통일교육 관련 업무를 담당한다. 그는 “어렵게 대한민국 국민이 됐는데 공무원까지 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1998년 형, 어머니와 함께 북한을 탈출했다. 중국을 자주 드나들던 어머니는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를 봤는데 거기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잘살더라”고 강조해 왔다. 이에 따라 이씨 가족은 남한에 가서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는 탈북 후 한동안 중국에서 채석장과 벌목장을 전전하며 한국으로 갈 기회를 노렸다. 이씨와 형, 어머니는 2002년 주중 알바니아 대사관을 찾았다. 이씨와 형은 대사관 담을 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중국 공안에게 붙잡혀 북한으로 추방돼 현재 정치범 수용소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공무원은 오랜 꿈”이라고 했다. 그의 어버지와 어머니가 영향을 줬다. 그의 아버지(작고)는 북한에서 전문대학 교수로, 어머니는 고교 교사로 일했다. 그는 국내에 정착한 뒤에도 전남대 중어중문학과에 다니며 행정학을 복수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틈틈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을 정도다. 최종 면접을 앞두고 예상 질문을 50개나 뽑아서 준비했다. 그는 “북한에 머물고 있는 어머니를 위해서도 남북통일은 하루 빨리 성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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