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덜 받고 새 집 지어줄 업체 없으니 꿈 깨세요"

조인스랜드

입력

업데이트

[권영은기자] '일반분양가 올리자니 미분양 우려, 수익성 낮추자니 조합원 부담 가중…'. 재건축 아파트들이 요즘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착공을 코 앞에 두고 집을 지어줄 건설사를 구하지 못하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공짜로 새 집을 지으려는 욕심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서울 강동구 고덕주공2단지. 총 공사비가 1조원에 달하는 매머드급 단지여서 건설사들이 군침을 흘렸던 재건축 단지입니다.

그런데 예상 외의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7월 첫번째 입찰에서 시공사를 구하지 못하더니 최근 두번째 입찰도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내년에 '삼수'에 도전한다는 계획이지만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공사 조건을 종전보다 완화했다간 조합원들의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같은 문제가 과천 주공2단지에서도 벌어졌습니다. 이 단지 역시 공사비가 5000억원에 달해 일감이 귀한 요즘 같은 시기에 건설사들이 마다할 이유가 없어보이지만 집을 짓겠다는 건설사는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무상지분' 남발, 결국 후유증 '몸살'

건설사들이 재건축 사업을 외면하는 이유로는 주택경기 침체와 사업방식이 꼽힙니다. 집값 하락세가 멈추지 않으면서 집을 사려는 구매자를 찾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요즘 수요자들은 매매보다 전세를 선호합니다. 구매력이 낮아지면서 미분양 발생 위험은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합은 공짜로 받을 새 집 면적은 많이 받으면서도 미분양 책임은 건설사가 떠안는 사업 방식을 고집합니다. 확정지분제 방식인데요. 조합원 보유 대지지분 대비 공짜로 받을 수 있는 새 집 면적을 정해놓고 공사 과정에서의 이익과 손실은 모두 건설사가 책임지는 것을 말합니다.

건설사들은 그동안 손실을 보전하고 이익을 내기 위해 일반 분양가를 높여왔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분양가를 높일 수가 없습니다. 분양가를 높였다간 미분양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미분양에 대한 손실은 건설사가 져야 하니 외면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해당 단지 조합들도 억울한 측면이 있답니다. 공사 조건을 완화했다는 것이죠.

고덕2단지 조합 관계자는 "당초 건설사가 분양에 대한 책임을 모두 져야 했지만 두번째 입찰에서는 조합과 시공사가 협의해 해결하는 등 조건을 바꿨는데도 시공사를 구하지 못했다" "내년에 다시 시공사를 구할 예정이지만 입찰 조건을 더 낮추기 어렵다"고 토로했습니다.

시공사를 구해놓은 단지들도 속앓이를 하긴 마찬가집니다. 서울 고덕지구가 대표적인데요. 2년전(2010) 서울시의 공공관리자제도가 시행되기 전에 시공사로부터 높은 무상지분율을 약속받았었습니다. 무상지분율은 조합원이 보유 대지 지분 기준으로 무상으로 받을 수 있는 새 아파트 면적 비율을 말합니다. 이는 재건축 사업 수익성을 측정하는 지표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공관리자제도가 시행되면 시공사 선정 시기가 '사업시행인가 이후'에서 '관리처분인가 이후'로 바뀌기 때문에 사업 지연을 우려한 조합과 당분간 일감 확보가 어려워질 것으로 본 시공사들이 수주에 열을 올리면서 높은 무상지분율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이 단지들의 사업은 답보 상태에 빠져있습니다. 고덕주공7단지는 2010 6월 롯데건설이 무상지분율 163%를 제시하고 시공권을 가져갔지만 착공은 커녕 시공사와의 본계약 체결도 안 된 상태입니다. 시공사가 당초 약속한 계약조건으로 집을 짓기를 꺼려하기 때문입니다.

고덕주공 6단지 역시 같은 고민에 빠져있습니다. 2010년 두산건설이 고덕7단지보다 더 높은 무상지분율(173%)을 제시했지만 사업을 그대로 진행하는데 여전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결국 높은 무상지분율을 약속받으면서 조합원들의 공짜집에 대한 기대감은 커졌는데 현실이 따라주지 않자 재건축 사업의 발목만 잡고 있는 형국입니다.

재건축 전문가들은 이 같이 말합니다.

"조합원 여러분, 돈 덜 받고 새 집 지어줄 건설사 없으니 꿈 깨세요.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동안 돈 덜 받고 새 집 지어준 건설사 없습니다. 그만큼 이윤이 남으니까 사업을 했던 것이죠. 새 집을 지을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유지하면서 늘어나는 금융비용을 감당할 것인지 결정을 내릴 때 입니다".

재건축 무상지분율

재건축 조합원이 가진 땅(지분)을 기준으로 무상으로 받을 수 있는 새 아파트 면적 비율. 무상지분율이 150%이라면 33㎡짜리 땅을 가진 조합원에게 아파트 49.5㎡를 추가 부담금 없이 지어준다는 뜻이다.시공업체는 보통 일반아파트 분양가를 높여 이 비용을 충당한다. 무상지분율을 둘러싼 조합과 시공업체의 이해관계는 엇갈린다. 조합 입장에선 무상지분율을 높이는 게 유리하고 시공업체는 낮은 무상지분율이 낫다.주택시장 침체 등으로 분양가를 비싸게 받지 못해 분양수입이 공사비용보다 적으면 시공업체는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저작권자(c)중앙일보조인스랜드. 무단전제-재배포금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