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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시 빌딩·정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6층 이상만 38개>
남대문로의 4층짜리 A[빌딩]은 대지가 4평, 말이[빌딩]이지 사랑방만도 못한 넓이-이번에 다시 두 층을 더 올리겠다고 허가원을 냈다.
상품은 아무리 비싸도 돈주고 살 수 있지만 땅은 자꾸 생기질 않는다. K복덕방 김노인은 "금싸라기 땅은 한번 [임자의 손]에 들어가 버리면 [금덩이]를 주고도 다시 얻어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손바닥만한 자리만 있어도 비집고 들어가 하늘로 치솟을 밖에 없다는 것.
서울에는 6층 이상 건물만도 38개. 시도시계획국 계획과에서 최근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소공동에만 7개, 남대문로에 9개, 그 다음으로 다동과 무교동에 각각 3개-이 지역은 도심중의 도심으로 땅값은 평당 50만원을 오르내린다. 올 들어 9월까지 허가가 나간 5층 이상건물은 자그마치 1백28건, 작년의 57전보다 배가 넘는다. 그러나 [빌딩·러쉬]는 정치 바람도 탄다. 정치자금이 많이 드는 선거 때에는 건축건수와 건평이 줄어들고….

<[빌딩]은 도로 도둑>
도로 기술자 이씨는 무허가 판잣집이나 [빌딩]이나 [길을 도둑질]하는데는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충무로 입구에서 조선[호텔]로 빠지는 소공동 길은 좁지만도 않은 4차선-그러나 양쪽 1차선씩은 주변[빌딩]족들의 자가용차가 꽉 들어차 근무시간에 다른 차가 쓸 수 잇는 길은 사실상 남은 2차선뿐, 골목길이나 다름이 없게 되어 있다.
N[빌딩]은 치하 합쳐 14층-최신식 시설을 자랑하고있지만 정작 가장 중한 주차시설이 없다. 이[빌딩]은 35미터이상 올릴 수 없다는 현행규정을 뛰어 넘어43미터까지 올리도록 허가 받았다. "옆에 광장이 있다"고 해서 그러나 그 광장은 그 [빌딩]소유 아닌 [시민의 광장]종사원이나 외래 은 이 광장에 차를 세운다.

<주차장과·녹지 둬야>
외국 도시서는 건평과 대지의 비율을 따져 그 건물의 수용인원에 따른 주차장과 녹지를 마련하지 않으면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우리 나라에는 그런 것이 없다. 그래서 그 많은 [빌딩]중 주차장 시설을 제대로 갖춘 것은 한 두 개 뿐. 시에는 각[빌딩]의 대지와 건물상 면적 비율기준도, 그만한 [빌딩]이 가져야 할 주차장 계획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뒤늦게 주차장과 [엘리베이터] 시설규정을 삽입한 건축법 개정안을 올려놓았지만 얼마의 공터를 가져야하고 몇 층 이상에 [엘리베이터]를 놓을 것이냐엔 아직 머리를 못 쓰고있는 실정.
시 도시계획 당국자는 "한자 앞을 내다볼 줄 모르는 상혼이 더 큰 앞날의 이익을 놓치고 만다"고 [빌딩] 건축자들의 좁은 소견을 비유했다. 5∼6년만 지나도 주차장 시설 없는 [빌딩]과 [호텔]은 아무리 도심이라고 해도 문을 닫게 될 거라는 것.

<하늘을 정리하자>
덕수궁 옆에 있는 T관은 성냥곽 6층, 그 바로 옆에 12층 짜리 K[빌딩]이 서고, 요즘에는 그들 담벽에 바싹 붙어 또 하나의 자그마한 [빌딩]이 세워지고 있다.
한 도시문제 전문가는 현대 도시는 "개개의 건축미 보다 전체로서의 구성미가 중하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울의 하늘]을 정리해야 될 거라는 것. 함께 붙어있는 세 [빌딩]이 한꺼번에 공사를 하면 건축비도 엄청나게 덜 들고 기능면도 훨씬 좋아질 거라는 건축 기술자의 견해. 그래서 시 당국은 세분된 땅을 합쳐 큰 건물을 함께 지을 수 있도록 건축법 개정안도 구상-곧 주요도로변의 [미관측정]에 나설 계획이다.

<먼 장내 위한 계획을>
서울의 [빌딩]은 많아서 [정글]이 아니다. 무계획한 설계와 내일에의 탈출구를 마련 못했기에 [정글]이 되고 말았다.
한 도시문제학자는 우리 나라에도 이른바 [공빌 시대]가 온다고 진단했다.
우후죽순처럼 [빌딩]은 치솟아도 거기에 들어갈 만한 기업체와 단체가 그만큼 생겨나지 못할 때 입지 조건이 나쁘거나 주차장 등 공공 시설이 없는 [빌딩] 창문에는 [세 싸게 놓음니다]라는 딱지가 나붙지 않을 수 없을 거라는 얘기. 한 건축 실무자는 그때를 위해서 뼈대만이라도 넓고 튼튼하게 세워주었으면 했다. 몽땅 헐지 않더라도 수리할 수 있게…. 눈앞에 닥칠 [공빌 시대]의 대비책으로. <빈> [컷·도시계획과장 한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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