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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의 FIS|불사조[게엘렌]의 아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전시[스파이]조직의 귀신 [라인하르트·게엘렌]은 지금도 서독연방정보부 FIS(독일명 BND)의 [보스]다. FIS는 독일 [나찌]때의 군사[스파이]망인 그 악명높던 [게엘렌]조직의 후신으로서 바로 [게엘렌]개인의 [스파이]조직이라고해두 과언이 아니다. 2차대전후 사진이라고는 찍은 적이 없는 [개엘렌]은 번번이 소련KGB첩자들에게 암살을 당할뻔 했으나 마치 불사조처럼 생명을 이어온 신비에 쌓인 당년 63세의 메마른 사나이. 그가 처형되지않고 FIS를 끌고 나가는것도 아마 미국을 위한 공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44년말 그는 소련이 [대동계공세]를 취하여 독일동부에 병력을 대량 투입할 것이라고 [히틀러]에게 보고하면서 앞으로 미·소는 반드시 적대국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으나 [히틀러]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일축하고 그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라고 노발대발했었다.
그러나 그의 정보는 빈틈없이 들어맞았으며 그는 정신병원에 가는 대신 대소관계 중요정보문서 50건을 갖고 [하인츠·구테리안]을 비롯한 일급보좌관 30명을 데리고 미군당국으로 넘어갔다. 1955년 서독이 완전독립을 하자 정부는 [게엘렌]조직을 인수, FIS를 창설하여 지금까지 그에게 대공정보활 등을 맡기고있다. [나찌]운동의 발생지 [뮌헨]에서 약 8킬로 떨어진 [플라하]촌에 높이10피트의 [콘크리트]담에 둘러쌓인 마치 호화로운 저택같은 한 [빌딩]이 바로 FIS의 본부다. FIS의 활동은 크게 양분되는데 그 하나는 철의 장막에 [스파이]를 투입하여 정보를 수집분석 하는 일, 또 하나는 서독내의 외국첩자들을 색출하여 허위정보를 제공하면서 2중간첩으로 이용하다가 종국에는 체포하는 일이다.
1951년부터 1960년 7월까지 만도 FIS는 공산첩자를 1천7백99명을 투옥시켰고 1만6천5백명을 색출하여 처벌않은 채 이용할 대로 이용했었다. 이들의 대부분은 항상 FIS의 위협을 받아 아무런 일도 못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FIS의 실력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게엘렌]첩자들은 공산국가의 공산당과 행정부만 파고드는 첩자, 거물급 공산가족들과 접촉을 갖는 첩자, 각국을 돌아 다니는 순회 [스파이], 표면적으로는 공산주의자를 위해 활동하는 2중 간첩 등 네형태가 있는데 현재 [풀·타임]첩자 5천명과 [파트·타임]첩자 5천명이 동독·소련을 비롯한 각국에 흩어져 있다.
그러나 FIS는 동독에 폭동이나 [사보타지]를 선동하여 불안을 조성시키는 일은 결코 하지않는데 그 이유는 [게엘렌]이 동독의 [쿠데타]는 서방으로부터 군사적 지원이 없는한 위험하며 실패하기 마련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독 [발터·울브리히트]내각에 [스파이]를 주입시켜 혁혁한 공을 세운것이라든지 서독내의 [체코] [스파이·링]을 일망타진한 업적은 서독 정부뿐아니라 각국의 정보기관에서도 인정해 주고 있다. FIS에도 소련KGB가 용이하게 침투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는 것은 아마 아직껏 가시지 않은 반미감정때문인지도 모른다. 전시[게엘렌]조직의 정보장교였던 [하인츠·펠페]는 전시미공군의 무차별폭력에 앙심을 품고 FIS의 방첩국차장으로 있으면서 [모스크바]의 지령에 따라 FIS안에 [스파이·링]을 만들어 1951년부터 61년 체포될 때까지 간첩활동을 했으며 작년 4월 체포된 [아데나워]전 수상의 개인참모였던 [에리히·헬비크]등 3명은 무려 10년간 [게엘렌]요원으로 활약하면서 FIS에 관한 서류를 담은 [마이크로·필름] 1만5천장과 녹음[테이프] 20권을 소련에 넘겨주었다. 1960년 당시 국방상 [프란츠·조셉·스트라우스]씨가 [게엘렌]이 있으니 U―2[스파이]기 를 미국에서 도입할 필요가 없다고까지 말하던 그가 1962년말 [게엘렌]과 군사정책상의 의견대립을 빚어내다가 결국 [슈피겔]지 필화사건을 계기로 국방상 자리에서 물러서게 됐으니([게엘렌]요원이 [슈피겔]지에 군사비밀 제공) [게엘렌]은 확실히 무서운 사나이다. 오늘도 지상과업인 통독을 앞두고 [게엘렌]의 조직 FIS는 동독 및 소련의 정보 탐지에 영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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