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 김수철 기능원] "전자현미경과 30년 동고동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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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부터 30년간 KIST의 전자현미경실을 지키며 현미경 사진을 찍어 온 덕에 기능직이지만 어엿한 국새 제작 연구원으로 등재됐다.

그만큼 김씨는 전자현미경을 다루고 사진을 찍는 일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가다.

"재료공학이나 생명공학 등 전자현미경으로 초미세 세계를 관찰해야 할 연구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요즘 하루에 1백장 정도 사진을 찍지만 아직도 연구목적에 맞는 사진을 만들기 어려운 게 많아요. "

한평생 전자현미경으로 각종 재료의 구조를 들여다보다 보니 철.금.아연은 물론 신소재들의 미세 구조도 한 눈에 꿰고 있다.

전자현미경 사진을 찍기 위해 직경 3㎜인 초박막 시편(試片)을 만드는 것도 그의 전문 분야다. 수백편의 KIST 박사들의 연구논문, 석.박사 학위논문이 그의 도움을 받아 작성됐다.

"내가 촬영한 사진을 쓴 연구논문 중 틀리게 해석한 것을 볼 때 가슴 아프다" 고 그는 말했다. 한우물만 파는 그를 보고 동료들은 ''살아 있는 골동품'' 이라고 부른다.

"남들처럼 공부를 많이 했으면 이렇게 오랫동안 현미경을 붙들고 있지 않았을 거예요. 다른 분야로 갈 밑천(학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현미경과 결혼한 셈이 돼 버렸지요. " 그의 말대로 방송통신대 졸업이 학벌의 전부다. 그러나 이제 전자현미경에 관한한 그를 가르칠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초년병 시절엔 외국에서 공부하고 막 들어온 사람들로부터 전자현미경 다루는 기술을 배웠지만 이제 가르쳐 줄 때가 더 많다" 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연구진은 그가 해석해주는 재료의 구조 등을 그대로 믿는다.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그의 ''현미경 인생'' 은 또다른 ''훈장'' 을 그에게 선사했다. 그는 국새 제작뿐 아니라 한국 고고학 관련 23편의 연구 논문의 공저자로 이름을 남겼다.

연구 논문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석.박사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풍토에서 이례적이다.

금속학의 대가였던 고(故) KIST 최주 박사와 밤을 새우며 토기.청동기.철 주조터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땀의 보답이다.

그와 최박사는 유리를 만들던 유적지로 한 때 고고학계에 알려졌던 곳을 쇠를 만들던 곳으로 바로 잡아 국사 교과서를 바꾸게 하기도 했다. 진정한 이 시대의 장인(匠人)은 그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박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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