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해도 빚 못갚는 ‘깡통주택’ … 19만 명 공식 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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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한국 경제의 최대 뇌관으로 떠오른 ‘가계부채’의 경보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 100명 중 4명은 집을 경매에 넘겨도 빚을 갚기 어려운 ‘깡통주택’ 소유자였다. 신용등급이 낮고, 세 곳 이상의 금융회사에서 주택담보대출을 한꺼번에 받은 ‘벼랑 끝’ 채무자만 23만 명에 달했다. 하지만 경기 침체로 가계소득이 줄고 있어 가계부채 부담을 줄일 대책을 찾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금융감독원이 2일 발표한 ‘주택담보대출 리스크 현황’에 따르면 9월 말 기준으로 경매 경락률(평균 76.4%, 시가 대비 경매낙찰가 비율)을 초과한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13조원으로 집계됐다. 전체 주택담보대출 중 3.3%이며 대출자 숫자로는 19만 명(3.8%)이다. 빚을 갚지 못해 경매로 집이 팔려도 대출금에도 못 미치는 ‘깡통주택’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금융감독 당국이 모든 금융사를 전수조사해 깡통주택의 숫자를 공식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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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현근 금감원 은행감독국장은 “최근 집값 하락의 여파로 주택담보대출 중 담보인정비율(LTV) 한도 60%를 초과한 대출자도 94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전체 주택담보대출자의 18%를 넘는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런 수치가 전·월세 보증금 등을 감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월세 보증금은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돈이란 점에서 부채의 성격이 짙다. 이를 고려하면 깡통주택의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KB금융연구소는 보증금을 포함한 부채가 집값의 70%를 넘는 아파트가 전국에 34만여 가구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이 연구소 관계자는 “단독주택과 통계에 잡히지 않는 전·월세 보증금을 감안하면 깡통주택은 훨씬 많을 것”이라며 “집값 하락과 경기 침체로 깡통주택이 계속 늘어난다면 ‘금융회사 부실→실물경제 타격→국가경제 위기’라는 도미노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의 장기불황,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등도 모두 이런 주택담보대출의 부실이 출발점이었다.

 실제 올해 8월 말 기준 금융회사의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1.32%로 지난해 말(0.95%) 이후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특히 상환능력이 떨어지는 채무자가 이용하는 저축은행(11.58%)·여신전문금융사(5.22%)·상호금융(3.42%)의 연체율이 높아 저신용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의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용등급이 7등급 이하이면서 3개 이상의 금융회사에 대출을 받은 저신용 다중채무자의 주택담보대출은 총 25조6000억원으로 대출자 수는 23만2000명에 달한다. 대부분(23만 명)이 비은행권에서 대출을 이용하고 있다.

 고려대 경제학과 오정근 교수는 “한국 정서상 집이 최후의 보루인 점을 고려하면 이들이 다른 금융자산으로 빚을 갚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며 “이들이 빚 부담을 줄이는 ‘소프트랜딩’을 유도하고, 정밀한 금융안전망을 구축하는 문제가 한국 경제의 최대 숙제”라고 말했다.

 감독 당국은 우선 부실 위험이 가시화된 1개월 이상 주택담보대출 연체자와 LTV 80% 초과 대출자부터 정밀조사하기로 했다. 이들은 4만 명씩 최대 8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금감원 이기연 부원장보는 “현재까지는 감내할 정도의 수준이지만 일부 취약계층과 제2금융권의 부실채권 증가가 우려된다”며 “취약계층의 상환 부담을 지속적으로 줄이고, 가계부채에 대한 모니터링과 현장점검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각종 불안요인이 얽히고설켜 있어 금감원의 선제 대응이 얼마나 효과를 볼지는 미지수다. 금융연구원 김우진 연구원은 “가계부채 규모는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다르고, 깡통주택이라는 개념도 명확하게 정립돼 있지 않은 상황이라 ‘맞춤형 처방’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며 “특히 부동산과 소득·경기 등 연관된 변수가 너무 많아 해답을 내놓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깡통주택 - 기준은 분석기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집을 팔아도 담보대출이나 전세금을 다 갚지 못하는 주택을 뜻한다. 최근 집값이 하락하면서 늘고 있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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