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왜식 멘틀 테스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꼬마들이 앉아서 열심히 책을 들여다보고 있다. 만화책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애들이 표정은 유난히 심각하다. 손에든 색연필를 가지고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그 책에는「똘똘이 모험이」나「정글북」같은 낭만적인 그림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세모꼴이 있고 작대기가 있고, 이야깃 거리가 없는 각종 그림들 뿐이다. 국민학교 시험문제집인 것이다. 꼬마들도 입시준비를 하게된 세상이 놀랍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입시문제집이라는 것이 모두 일본 것을 복사한 것이라는 점이다.「일본경도 여자대학부속 소학교 입시문제」「동경자유학원 초등부」「입시문제」「동경입교학원입교 소학교」등등의 꼬리표까지 달아 놓았다. 말하자면 일본색은 국민학교 문턱으로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그래서 담뱃갑을 그린 그림이「아리랑」이나「파고다」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는 좀처럼 구경할 수 없는「피스」이다. 인형도 일본옷을 입었다.『공갈이다. 이런 담배가 어디있니…』문제를 풀다말고 이렇게 소리치는 아이들을 보면 이중으로 측은한 생각이 든다.
정부에서는「농업발전기본법안」에 성안하여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법안을 보면 일본의「농업기본법」을 그대로 번역한 것 같은 감이 있다고 수군대는 사람들이 많다. 내용만 비슷한 것이 아니라 용어까지도 그렇다는 것이다. 좋은 것을 본받는 것은 흉이 아니다.
그러나 혹시 그것도 우리 풍토에는 맞지 않는 희농 제1호의 벼종자같은 것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토지의 세분화를 막기 위해서 농업의 일자상속등 필요한 시책을 강구한다는 것도 그렇다. 아들에게 골고루 땅은 분배하면 대대로 내려 갈수록 1인당 경작면적은 좁아지기만 한다. 그러다 보면 영세농만 생겨 농촌이 피폐해진다.
이것은 일본농가 직면한 고민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일자상소을 하게 되면 나머지 아들들은 땅을 떠나야 한다. 농촌에는「쿠오바디스」의 선풍이 분다. 공업화가된 일본 같으면 문제가 없다. 공장으로 가면 된다. 그러나 귀거래사를 불러야 할 우리형편은 어떤가? 덮어놓고 일본색을 배격하자는 것은 아니다. 매사가 우리의 풍수에 맞아야 꽃은 핀다. 일본의 귤이 우리들판에서 감처럼 열릴수 는 없다. 왜식「멘틀테스트」로는 안 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