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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 로빈슨 크루소를 아십니까?

중앙일보

입력

외딴 숲속이나 무인도에 고립되어 있었던 사람의 이야기는 읽는 이에게 독특한 감동과 재미를 줍니다 . 「로빈슨 크루소」, 「15소년 표류기」 그리고 「푸른 돌고래 섬」 등은 이런 종류의 동화 중 걸작이라고 할 수 있지요. 윌리엄 스타이그의 『아벨의 섬』(다산기획)도 비슷한 상황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곤경을 당한 게 '사람'이 아니라 '생쥐'라는 점이 동화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고 있어요. 생쥐 로빈슨 크루소라니? 무언가 아주 재미있는 일이 기대되지 않나요?

부유한 생쥐, 또는 나약한 현대인
생쥐 아벨은 아내의 스카프를 주우려다 폭풍우에 휘말려 강 한가운데 있는 섬에 갇혀 버렸어요. 그리고 그때부터 아벨의 1년 여의 걸친 살아남기 투쟁이 시작됩니다. '표류기'의 큰 재미는 자연 속에 홀로 남겨진 문명인이 약간의 소지품만으로 생활해나가기 위해 벌이는 여러 가지 일들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아벨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입고 있는 옷과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약간의 물건들뿐이었어요. 처음에는 불평만 하던 아벨도 차차 아무것도 없는 생활에 익숙해집니다. 하나하나 일상생활의 물건들을 직접 만들기 시작하며 살아남을 방법을 찾게 되지요. 풀을 뽑아 옷을 만들고, 씨앗의 솜털을 모아 겨울을 견딜 이불을 만들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이런 장면을 읽으면서 두 주먹 불끈 쥐게 하는 용기를 키우고 어느 새 상상 속의 섬으로 달려가게 될 거예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책에 나오는 '생쥐 아벨'이 사람 중에서도 부유한 귀족 가문의 젊은이와 흡사하다는 것이에요. 여기서 이 책이 지니고 있는 깊은 곳으로 들어가게 되는 열쇠가 보입니다. 일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안 하고, 우아한 음악과 고상한 책에 둘러싸여 지냈던 생쥐 아벨은 생쥐 본연의 습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가지고 있지 않았지요. 하지만 아벨은 결국 섬에서 점점 자연에 대해 배우고, 나무를 갉아 먹거나 올뺴미와 맞서 싸우는 '본능'을 일깨우게 됩니다. 작가는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생쥐가 자신의 본능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간이 문명을 벗어나 자연 앞에서 찾아야 할 '본성'에 대해 더욱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시도는 놀랄 만큼 큰 효과를 거두고 있어요.

헤어진 가족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
이 동화에서 또 하나, 중요하게 보여지는 것은 바로 '가족에 대한 사랑'입니다. 스타이그는 「당나귀 실베스타와 요술 조약돌」, 「녹슨 못이 된 솔로몬」 등 그의 몇몇 다른 작품에서도 헤어지게 된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루었어요. 조심스럽게 추측해 보면 70년대 중반, 이혼을 해서 헤어지게 되었던 아내와 딸에 대한 그리움이 많은 영향을 끼친 듯 합니다.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진실한 감정은 아벨이 헤어진 아내 아만다를 그리워하는 문장 곳곳에서 가슴 아프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벨은 아내를 보고 싶어 하다가 꿈 속에서, 그리고 깨어 있을 때 '마음의 메시지'를 보내며 그녀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부모님과 형제, 아내의 형상을 진흙으로 정성스럽게 만들며 마음을 달래지요.

이 동화는 두 가지 '없음'에 대해 아름답고 예리한 문장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문명'의 없음과 '가족'의 없음. 문명은 항상 인간의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없어졌을 때야 비로서 우리가 잃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그건 바로 마음의 고요함과 자연과의 공생, 그리고 직접 자신의 삶을 헤쳐나가며 얻게 되는 자신감과 용기지요. 또 가족도 마찬가지로 항상 우리 곁에 있기에 그 소중함을 알기가 어렵지요. 생쥐의 무인도 표류기를 그린 「아벨의 섬」은 재미있는 모험 이야기를 하면서, 작가는 자신의 철학을 동화 속에 자연스럽게 담고 있어요. 어린이들은 처음에 이 책에서 신기하고 즐거운 이야기의 재미만을 느끼다가, 좀 더 마음의 키가 자란 어느 날, 문득문득 이 책이 지닌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될 거예요..(이윤주/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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