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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악 요람' 국악예고 개교 40주년 맞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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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한 후 맨 먼저 배운 노래가 단가 '죽장망혜(竹杖芒鞋)' 였어요. 경기민요.가곡.시조.해금.거문고.가야금을 배웠고 방과 후에는 모든 학생들이 농악 연습에 참가했습니다. 저는 주로 꽹과리를 연주하거나 상모를 돌렸지요. 밤늦게 남아 시끄럽게 연습한다고 이웃 주민들이 '밤도깨비들' 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 (김영재.5회)


"찌들게 가난했던 시절이었지만 당대 최고의 명인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했습니다. 기악은 물론, 마당놀이.탈춤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쟁쟁한 분들이셨지요. 얼마전 돌아가신 김희조 선생님이 서양음악 이론을 가르치셨습니다. 구전심수(口傳心授)에 그치지 않고 과감히 오선지로 채보한 서양악보로도 배웠지요. " (김덕수.9회)


'민속악의 요람' 국악예고 출신 명인들이 개교 40주년 기념공연 연습을 위해 서울 시흥동에 있는 모교 향사기념관에 모였다. 모두 국악계에서 내로라 하는 '쟁이' 들. 한 자리에 모이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그래서 연습도 연습이지만 옛날 학창시절로 돌아가 얘기꽃을 피우기에 바빴다.

사물놀이 협주곡 '신모듬' 의 작곡자 박범훈(중앙대 부총장), 사물놀이의 명인 김덕수(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최종실(중앙대 국악대 교수), 거문고 산조의 명인 김영재(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씨.

뿐만 아니다. 예총회장 이성림, 국립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 한상일, 서도민요의 차세대 선두주자 김광숙, 남원국립국악원 예술감독 김무길, 국립국악원 민속단의 터줏대감 장덕화, 국립창극단의 간판스타인 판소리 명창 왕기철.유수정, 신세대 명창 조주선….

어디 그뿐이랴. 영화 '서편제' 의 오정해, '노랑머리' 의 이재은, 탤런트 견미리.송채환, 가수 김세레나.바니걸스.양수경 등 연예계에 진출한 동문들도 있다.

69년 YMCA 강당에서 박범훈(피리).이철주(대금).최태현(해금).박미령(가야금).김무경(아쟁)등 국악예고 동문들로 창단공연을 한 민속악회 '시나위' 는 '최초의 국악 실내악단' 이었다.

창작음악의 초연과 함께 전통음악의 발굴과 현대적 재현, 굿음악과 토속음악의 현대화 등을 화두로 활동해왔다.

민속악회 시나위 회원 출신들은 79년 국립국악원이 신설한 민속반에 단원으로 대거 진출했다. 78년 2월 서울 원서동 공간사랑에서 열린 민속악회 '시나위' 주최 '전통예술의 밤' 에서 사물놀이를 독립된 장르로 처음 선보였다.

김덕수(장고).김용배(꽹과리).최태현(징).이종대(북)가 출연했다. 반응이 좋아 시나위의 타악 파트는 아예 사물놀이로 독립했다. 2년 후 이광수.최종실을 새로 영입한 것이 '원조' 사물놀이인 셈이다.

국악예고 교사를 지냈던 민속학자 심우성씨가 그 시나위의 이론적 뒷받침을 제공했고 사물놀이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남 산 시절 현대감각에 맞는 음악장르를 개척하기 위해 창단한 학생국악관현악단이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모태다.

해금의 명인 지영희 선생이 초대 지휘자를 지냈고 김동진.김희조 선생이 작곡위원을 맡았다. 당시 53명의 초대 단원 중에는 서공철.성금련(가야금), 신쾌동(거문고), 한범수(대금), 이정업(장구), 김득수(북)등 쟁쟁한 명인들이 포함됐다.

64년 7월 15일 시민회관(현 서울시의사당)에서 열린 창단공연은 관현악.가야금병창.입체창극 춘향가.태평무.농악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꾸며졌다.

최초의 국악관현악단 창단은 당시 '전통음악의 현대화' 와 '전통음악의 와해' 등으로 엇갈린 평가로 음악계의 화제를 몰고왔다.

이듬해 서울시국악관현악단으로 승격돼 당시 2학년으로 정식 단원이 된 김영재(거문고)씨 등 몇명은 공무원 자격으로 월급을 받기도 했다. 그후 30년이 지난 지금 30여개 국악관현악단이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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