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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기자의 레저 터치] 외국인 관광객 1000만 시대의 불편한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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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기자

한 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 처음으로 1000만 명을 넘어섰다. 2010년 이후로 해마다 100만 명꼴로 늘었으니 가히 폭발적인 성장이라 할 수 있다.

 잔치판이 열렸으니 논공행상이 한창이다. 문화체육관광부·한국관광공사 등 주무 부서, 그리고 올해 사업이 끝나는 한국방문의해위원회까지 자기 자랑이 한창이다. 관광산업 규제 완화, 공격적인 해외 마케팅, 코리아그랜드세일 등등, 자기네 사업을 1000만 명 유치의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생큐 리스트’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MICE(회의·관광·컨벤션·전시) 산업을 주도하는 지식경제부는 올해 국제회의 개최 건수가 5년 만에 73% 증가했다고 강조하고, 보건복지부는 의료관광객이 5년 만에 8배 뛰었다고 자랑이다. 외교통상부는 2009년 134만 명에 불과했던 중국인 관광객이 올해 300만 명을 넘어선 이유가 비자제도를 개선한 효과라고 주장한다.

 감사해야 할 대상은 세도 세도 끝이 없다. 중국인이 1년 내내 서울시내 백화점을 점령하다시피 한 건 올해 위안화가 강세를 유지한 덕이 크고(우선 중국에 감사하고, 백화점 관계자도 고맙다), 중국과 일본의 관계가 틀어진 것도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이건 누구에게 감사해야 하나).

 문화관광부는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 돌파의 첫째 배경으로 국격(國格) 제고를 꼽았는데, 국가 이미지 개선이라면 한류를 빼놓고는 성립하지 않는다. 국내 관광업계는 욘사마 배용준을 비롯해 슈퍼주니어·장근석, 나아가 싸이까지 한류스타를 필생의 은인으로 모셔야 한다(지난 25일 방영된 SBS 인기가요가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돌파 특집 방송’으로 꾸며진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아울러 잠잘 데 없어 방황하는 외국인을 거둔 찜질방 사장님에게 감사하고(지난해 수도권 호텔은 수요에 비해 8300실 이상 부족했다), 외국인을 온종일 인사동~동대문~명동으로 끌고 다닌 가이드에게도 감사한다(외국인 관광객의 70%가 한국에서 가장 인상적인 활동을 쇼핑이라 답했다). 딱히 뭘 했는지 모르겠지만, 서울시는 특별히 고맙다(외국인 관광객의 80%가 서울에 머물다 돌아간다).

 아무튼 다들 잔치 분위기다. 한데 유독 잠잠한 쪽이 있다. 대선 주자들이다. 관광업계가 다른 이익단체처럼 단결된 모습을 보이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아무리 많이 들어와도 외국인에게는 투표권이 없어서인지 21세기 성장 동력이라는 관광산업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입을 다물고 있다.

 이쯤에서 1000만이란 숫자에 가린 숫자 몇 개를 공개한다. 외국인 관광객은 최근 3년간 해마다 100만 명씩 늘었지만, 같은 기간 외국인 한 명이 한국에서 쓴 돈은 1년에 4.4%밖에 늘지 않았다. 한국 여행 만족도는 2007년 4.07(5점 만점)에서 지난해 4.02로 되레 떨어졌다.

 그건 그렇고 ‘입국’이란 낱말이 언제부터 ‘관광’과 동의어가 됐을까. 올 한 해 1000만 명이 넘었다는 외국인 관광객은 실은 올해 우리나라에 입국한 외국인 수를 가리킨다. 외국인이면 누구나 출입국관리소를 통과하는 즉시 관광객 신분을 획득한다. 다른 나라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지만, 그래도 찜찜하다. 우리나라가 혹여 관광 선진국으로 오해될까봐 하는 소리다.

손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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