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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르고 아름다운 한글의 순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오늘 10월9일은 훈민정음반포 5백 열 아홉 돌이 되는 한글날이다. 한문이 진서로 불리고 이독로써 간신히 우리의 의사를 표현해 오던 문화의 예속에서 벗어나 말과 글이 일치되고 문자와 문화의 대중화가 이륙되게 된 것은 오로지 한글의 덕이며 이것을 창시한 세종대왕의 위업을 새삼스럽게 되새기게 한다. 한글의 창시는 이러한 의미에서 정히 이 나라 문화의 근대화를 획하는 일대혁명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한서에서 정치와 교육의 본을 따오던 중화사상에 젖은 고루한 지배계급과 봉건적·절대주의적인 신분구조에 화를 입어, 만방에 으뜸가는 한글은 오랫동안 언문으로 천대되어 왔다. 뿐만 아니라 왜제 하에서는 우리의 문자와 언어까지도 말살하려 들었던 잔학한 일본 식민정책 때문에 한글학회 사건에서 볼 수 있었던 것과 같은 한글학대가 계속되었다. 그 결과 초래된 것, 그것은 민족문화의 쇠잔이었고 민족적 자주성의 상실이었다.
해방 된지 20년, 우리 것을 되찾고 우리 것을 창달시켜야 되겠다는 요청과 희구에도 불구하고, 자주적인 민족문화의 형성은 아직도 그 갈피를 못 잡고 있다하여 과언이 아니다. 상용한자를 일상 관용어에 제한하고, 우리말과 우리 글의 순화를 기하여야되겠다는 것은 비단 언어나 문자에 국한된 것일 수가 없다. 우리의 사고를 우리 식으로 하고, 대화의 형식과 내용이 한글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기 전에는, 온갖 문화발전의 구호는 그 실을 거둘 수가 없는 것이다.
문화의 국제적 교류가 확대되면 될수록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은 채장보단을 능히 할 수 있는 문화적 자주성이다. 문화의 자주적 형성이 없이 외래문화의 섭취란 있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상용어에서 전문용어에 이르기까지 내외언어와 문자의 잡다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현상을 돌이켜 본다면 올바르고 아름다운 한글의 순화는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이 사회의 근대화를 문화면에서 이끌어갈 중핵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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