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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일흔, 자유를 얻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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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시간이 진정 사람을 단단하게 할까. 닥종이 인형작가 김영희씨는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 다시 봄 속에 서 있다. 지난 시간을, 또 함께 해준 사람을 돌아보게 하는 일흔이라는 나이에게 ‘감사하다’는 인사가 절로 나온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늙으면 좋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닥종이 인형 작가 김영희(69)씨는 젊을 때 어머니의 이 말씀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 일흔에 접어드는 그가 어머니께서 하셨던 말씀을 그대로 되뇌고 있다. “아! 좋다. 늙으니 정말 좋다”고.

 그는 “지금이 내 전성기”라며 “이제 엄마로서의 삶을 졸업하고 한층 가벼워진 몸으로 날개를 달고 세상을 날아다니는 기분”이라고 했다. 드디어 진정한 여성으로, 또 진정한 예술가로 다시 태어났다는 설명이다.

 김씨가 첫 남편과 사별하고 세 아이를 데리고 열네 살 연하의 독일인 청년 토마스를 따라 독일 행을 감행한 후의 삶을 담은 책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가 나온 지도 벌써 20년. 그간 다섯 아이의 엄마로, 닥종이 인형 작가로 쉴 틈 없이 달려온 그가 일흔을 맞으며 에세이집 『엄마를 졸업하다』(샘터)를 펴냈다. ‘제2의 자서전’이다. 성인이 된 다섯 아이의 근황, 남편과의 결별, 그리고 일흔의 여울에 발을 담그며 느끼는 자유와 기쁨을 담았다. 23일부터 부산시 온천동 수가화랑에서 열리는 ‘김영희 회화와 종이조형전’을 위해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났다.

 -나이 일흔에 인생의 전성기라니.

 “아이들을 품에서 떠나 보내고 나니 엄마의 의무에서 벗어나 ‘죽을 자유’가 주어진 여자로 돌아온 기분이다. 일흔이란 나이, 내게 커다란 자유를 의미한다. 지금부터 인생은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비로소 나의 일, 즉 닥종이 인형 만들기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내가 좋아하는 한지를 제대로 탐구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아이들이 고물고물할 때는 절대 죽으면 안 된다, 아프면 안 된다고 매일 다짐하며 초조하게 살아왔는데, 드디어 책임은 다했다는 안도감이 몰려왔다는 설명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나이 듦’은 추한 게 아니라 화려한 아름다움에 가깝다고 했다. 70대 문턱을 들어서며 자화자찬이 늘어난 것도 그런 이유라고 했다.

 -자화자찬, 무슨 얘기인가.

 “평생 아이들을 칭찬하고, 남편에게도 최고라고 치켜세웠지만 돌아보니 나를 칭찬할 기회가 없었다 . 애들과 남편에게 지청구나 듣던 여자가 어찌 자신을 칭찬했겠나.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돈 욕심, 권력 욕심을 자제하지 못해 일을 그르치는 일도 없었고 아이들을 밥 안 굶기고 키웠으니 장하고 아름답다,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웃음)

 그는 책에서 다섯 자녀의 근황도 들려준다. 파산 기업의 법정관리 전문 변호사가 된 딸 이야기도 있지만, 보통 사람들과 약간 달라 사회 적응 어려움을 겪은 막내 아들 프란츠 얘기도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 남편과 결별했다고 했다.

 “96년부터 별거했고 98년 이혼했다. (책에서 김씨는 전 남편 토마스를 가리켜 “그는 아버지라는 자리에 설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고 적었다) 양육 방법 등 여러 면에서 부딪힐 때가 많았다.”

 김씨는 요즘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다. 연애편지를 60대 후반에 난생처음 써보았다고 했다.

 “내 나이를 보면 ‘가을 여자’라 하겠지만, 저는 사계절을 지나 다시 봄 속에 있습니다. 세월을 거스르는 ‘안티 에이징’은 관심 없어요. 자연으로 함께 흘러가는 ‘뉴 에이지’가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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