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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 이런 파격도 가능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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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실컷 욕 먹을 각오, 돼 있습니다.”

 전투에 나가는 것도 아닌데, 국립창극단 김성녀 예술감독의 말엔 비장미마저 느껴졌다. 그럴 만했다. 27일 개막한 창극 ‘장화홍련’은 국립창극단 50년 역사상 최고의 파격이었다. 괴이하고 낯설며 섬뜩했다.

 ‘장화홍련’에는 창극의 ABC에 비유되는 세 가지가 없었다. “이게 창극 맞어?”란 소리가 나올 법 했다. 구체적으로 소리에 맞춘 손·발 등의 동작(발림)이 사라졌고, 한복을 입지 않았으며, 창(唱)에 흥을 돋우는 고수가 없었다. 그 자리를 대신한 건 단원들의 대사와 연기, 현대적 의상, 그리고 “으으으-” 소리를 내는 혼령들의 음습한 효과음이었다. 또 해설 역할을 해 오던 도창(導唱)은 뮤지컬 ‘엘리자벳’의 토드(죽음)를 연상시키는 악마로 변신해 출연자의 내면을 자극했다.

 한태숙 연출가다웠다. 인간 내면의 어두움을 포착하고, 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던 그의 개성은 창극에서도 여전했다. ‘스릴러 창극’이란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 위에 ‘ㄷ’자로 627석의 객석을 올리고, 원래 객석을 장화·홍련이 수장된 호수로 처리했다. 고전 『장화홍련전』을 변용한 작품은 계모 허씨의 죄의식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현대인의 무관심을 저변에 깔았다.

 극 초반은 다소 어수선했다. 대사와 창의 이음새도 덜컹거렸다. 하지만 중반 이후 배씨 집안의 갈등이 부각되면서 드라마의 긴장감과 판소리의 처연함이 묘하게 어울렸다. 소리꾼으로선 국내 최고지만, 정극 연기엔 서툴 것으로 예상됐던 창극 단원들의 무대 장악력은 의외였다. 김금미(허씨)·윤제원(배장수·사진) 등은 당장 연극 무대에 서도 모자람이 없었다.

 당연, 반응도 좋다. 유료 객석 점유율이 80%를 넘었다. 창극은 고루하다는 선입견을 깼다. ‘장화홍련’의 도전은 성공이었다.

 ▶창극 ‘장화홍련’=30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2만∼7만원. 02-2280-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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