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초대손님 없어도 잘 나가요"

중앙일보

입력

요즘 라디오방송에선 심야의 청취자를 잡기 위한 경쟁이 뜨겁다. 방송사마다 스타급 진행자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런 가운데 특별한 컨셉트와 진행으로 돋보이는 가요 프로가 있다. 매일 자정에 전파를 타는 SBS FM의 '정지영의 스위트 뮤직박스' (107.7㎒) 가 화제의 프로.

우선 연예인이 아닌 아나운서가 이 시간대에 마이크를 잡는 것부터가 범상치 않다. 게다가 게스트가 전혀 없고, 시청자들이 사연을 보내준 데 대한 물질적 답례도 없다는 대목에 가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다.

제작진의 표현을 옮기자면 이른바 '무 연예인.무 게스트.무 선물' 의 3무(無) 가 이 프로그램의 특징이다.

그럼에도 '정지영…' 은 같은 시간대의 다른 경쟁 프로들을 제치고,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동호회원만 3만5천명을 넘어섰다.

"FM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선곡에 집중한 때문이 아닐까요. "

진행자 정지영(26.사진) 아나운서의 어찌보면 당돌한 해석이다. 그러나 이 말만큼 최근의 인기를 설명해 줄 수 있는 표현도 달리 없다.

"저희가 하루 스물한 곡 정도 소개하니까, 음…, 한달에 6백곡 정도 되잖아요□ 그 중에서 두 번 이상 나가는 노래는 20%도 안돼요. "

인기곡이라고 마구 트는 게 아니라 그만큼 곡을 선정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는 얘기다. 1980년대 음악부터 최신 댄스곡까지 샅샅이 훑어 숨어 있는 명곡들을 추려 낸다고 한다.

게스트가 없는 만큼 이 프로는 철저히 진행자와 청취자의 쌍방향 대화로 이뤄진다. 두 시간 정도인 방송시간에 사연은 홈페이지로 1천여건, 팩스로 2백여통 들어온다.

전윤표 PD는 "이 프로그램을 인터넷상에서 들으며 일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며 "컴퓨터와 라디오의 생산적 결합" 이라고 강조했다.

그만큼 차곡차곡 쌓인 사연도 많다. 지난해말 한 군인이 아버지가 위독하다며 헌혈증이 필요하다는 사연을 방송국에 급히 알려왔다. 이 내용이 나가고 2~3일만에 청취자들이 보낸 헌혈증서가 4백 장을 넘었다.

'정지영…' 은 오는 13일 방송 2주년을 맞는다. 이를 기념해 청취자들이 직접 선곡한 노래를 모은 음반을 낼 계획이다.

정지영 아나운서의 꿈도 부풀어 있다. "너무나 뜨거운 반응에 몸둘 바를 모르겠어요" 라고 말하는 그의 소망은 장수 DJ인 김기덕과 이문세, 유열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며 좋은 음악을 전하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