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있는 토크쇼] 마이클과 함께 영어로 성공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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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유학 등 요즘 한국 사회의 영어교육 열풍을 보면 영어가 과연 현대사회에서 살아 남기 위한 수단인지, 오히려 건강과 가족의 행복을 갉아먹는 해충인지 헷갈릴 정도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그리고 대학교나 직장에서까지….

10여년씩 공부했어도 막상 외국인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를 되뇌게 만드는 우리의 영어교육.

지난해 발간된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사회평론) 의 예상치 못했던 대성공은 그에 대한 일반인들의 잠재된 불만이 얼마나 컸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어 배우기를 방해만 하는 학교 수업은 무시하라는, 다소 과격한 주장까지 담은 그 책의 기본적인 입장은 '영어는 한국어와 전혀 다른 언어, 전혀 다른 문화의 산물임을 인정하고 시작하라' 는 것이었다.

단순히 단어 대 단어, 상황 대 상황을 일대일 비교해가며 영어 '학습' 에만 치우쳤던 기존의 책들과 달리 영어를 모국어 배우듯 문화와 함께 '익히는' 과정을 강조한 점이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섰던 것이다.

한국 생활 20여년, EBS의 영어강사로만 5년 이상 활약해온 마이클 마이어스의 신간 『마이클과 함께 영어로 성공하기』(명진출판.8천9백원) 도 같은 맥락에 있는 책이다.

각론에선 두 사람의 생각이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마이어스 역시 어떤 '획기적인' 영어 학습법을 보여주기보다는 "문화적 국수주의야말로 외국어를 배우는데 가장 큰 장애물" 이라며 발상의 전환이 우선임을 강조했다.

▶사회=몇 년 전 이보영씨와 함께 EBS라디오 '모닝 스페셜' 을 공동진행할 때 마이어스를 처음 알았다. 생소한 영어 단어들이 나올 때마다 한국 문화와 비교해가며 설명해줘 일반 영영사전을 찾는 것보다 더 이해하기 쉬웠던 것도 좋았지만, 가끔 한국어로 던지는 농담을 듣고 한국사람인 나보다 훨씬 낫다고 감탄했었다. 이 책도 부제처럼 '믿을 만한 영어 선생' 님이 본인 스스로 한국어를 배운 경험을 토대로 한 내용이라 그런지 쏙쏙 와 닿는다.

▶마이어스=고맙다. 나 역시 미군에 자원한 뒤 캘리포니아에 있는 미 국방부 언어학교(DLI) 에서 철저하게 '교과서 한국어' '교실 한국어' 로 시작한 사람이다. 나름대로 죽자사자 공부하고 왔는데도 실제 한국에 와선 말이 안 통해 고생했다.

그 문화를 모르면서 앵무새처럼 학습한 언어는 죽은 언어라는 걸 절실히 느꼈다. 그런데 제대 후 본격적으로 영어를 가르치다보니 나와 똑같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으면서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이 책을 내게 됐다.

▶사회=바로 그 점에서 『영어공부…』와 거의 메시지가 같다고 생각했다. 정찬용씨도 9년간 독일 유학생활을 하면서 느낀 외국어 습득의 비결 중에서 가장 큰 핵심은 무엇보다 '언어〓문화' 이기 때문에 '영어는 공부(study) 해야 할 것이 아니라 배워야(learn) 한다' 고 얘기한 것 아닌가.

▶정찬용=맞다. 이를테면 판에 박힌 생활영어책을 보고 외우는 것보다 실생활에 가까운 TV드라마나 영화비디오를 찾아 보면서 상황에 맞는 다양한 표정이나 행동과 함께 익히는 게 훨씬 오래 남고 실질적이다.

▶사회=책에 보니까 마이어스도 탤런트 남성훈이나 박상원을 역할모델 삼았다는 얘기가 나오던데.

▶마이어스=( '태조 왕건' 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그러하오(웃음) . 한국생활 초기에 미국에 잠시 돌아갔을 때 한국인 선생님이 나더러 여자같은 말투를 쓰고 있다고 해서 놀랐다. 그래서 한국에 다시 왔을 땐 당시 인기 드라마였던 '사랑과 야망' 등을 보며 한국어를 공부했다. 전형적인 한국신사의 말투와 행동이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렇게 자신의 성격에 맞는 배우의 역할을 그대로 따라하는 연습을 해보면 재미도 있고 영어실력도 금방 는다. 한국에는 특정 상황에서 잘 쓰는 '생활한국어' 가 있지만 미국인들은 같은 인사말도 조금씩 다르게 표현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생활영어' 란 없다. 그래서 자신의 개성에 맞는 표현들을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사회=조기영어교육은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가. 부모들의 관심이 대단하다.

▶마이어스=현재로선 지구촌에서 가장 영향력을 갖는 언어가 영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국어와 비슷한 시기에 영어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좋다. 예를 들어 아직 말을 잘 못하는 아기에게도 일주일에 한두번씩 영어로 된 비디오 테이프 등을 틀어줘라. 차츰 시간을 늘리거나 그림 위주로 된 영어동화 등을 보여주며 단계를 높여간다.

하지만 일단은 아이들이 재미있어 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아이가 부담을 느끼게 해선 안된다. 그리고 요즘엔 친구들이 영어를 배우면 덩달아 배우겠다고 조르는 아이들도 있는데, 아이가 먼저 나설 때 그 시기를 절대 놓치지 마라.

▶정찬용=그 점에 있어선 생각이 좀 다르다. 우선 영어를 누구나 다 잘 해야 한다는 것부터 말이 안된다. 필요한 사람만 배우면 되고, 학교에서도 프랑스어.일어 등 다른 외국어처럼 선택과목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만 문화의 다양성도 접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는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길이 된다.

또 독일에서 발표된 연구논문에 따르면 태어나자마자 다중언어환경에 노출된 아이는 정신분석학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확률이 높다고 한다. 마이어스도 한국말을 잘하는 사람이 영어도 잘한다고 책에 썼던데, 그래서 난 아이가 한국말을 어느 정도 할 수 있기 전엔 될 수 있으면 외국어를 가르치지 말라고 한다. 교육방식만 바꾼다면 열 살쯤부터 배워도 충분하다.

▶사회=어쨌든 처음 영어를 배울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 발음이라는 데는 일치하는 것 같은데.

▶마이어스=그래서 가능하면 원어민에게 배울 것을 권한다. 생각해 보라. 만약 내가 내 자식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다고 한다면 "당신도 한국어를 비교적 잘하니까 직접 가르쳐보라" 고 하겠는가, 아니면 학력 수준이 좀 낮더라도 한국인 교사가 나을 거라고 말하겠는가.

또 경상도나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국어 선생님한테도 학생들이 충분히 표준한국어를 배우는 것처럼, 사투리나 슬랭을 많이 쓰는 미국인도 영어를 전공한 한국인보다 더 좋은 선생님일 수 있다. 원어민만이 느끼는 단어의 문화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학교에도 원어민 강사가 한 명씩은 꼭 배치되도록 해야 한다.

▶정찬용=전적으로 공감한다. 현재의 영어교사들을 모두 재교육하거나 원어민으로 바꾸는 것은 예산상으로 어렵더라도, 발음이 비교적 정확하고 그 문화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다면 최소한 영어권에서 오래 살다 온 한국인 강사라도 꼭 한 명씩 배치한다면 다른 한국인 교사들에게도 파급효과가 클 것이다.

▶마이어스=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면 먼저 반감부터 갖는 한국인들이 많다. 한국 고유의 문화를 포기하거나 미국 문화를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말이 절대 아니다. 서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이해하려는 자세부터 갖춰야만 그 언어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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