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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서] SUV "타자" "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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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지금 미국에선 'SUV(지프형 스포츠.레저 차량)를 타야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SUV는 국산으로 치자면 무쏘.산타페에 해당하는 다목적 차종. 1990년대 말부터 미국 일반가정의 주요 차종이었던 일반 승용차나 승합차(밴)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자동차 업계가 돌파구로 내놓은 상품이다.

처음엔 "일년에 몇 번 비포장길을 달린다고 그런 비싼 차를 사냐"고 외면하던 소비자들은 TV광고가 쏟아지자 이내 흔들렸다. 광고는 '승용차 모는 남자는 고리타분한 샐러리맨''밴을 모는 여자는 시장가는 주부'라는 메시지로 시작하다 'SUV 모는 남녀는 부유하고 모험.여가를 즐기는 여피'라는 여운을 남기며 끝난다.

이에 자극받은 소비자는 '옆집도 SUV 샀는데…'라는 식으로 바람을 일으켰고 지난해 자동차 회사는 회사 전체 수익대비 SUV비중 60%라는 대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지난해 한 신문 칼럼니스트가 "SUV는 휘발유를 30%나 더 잡아먹고 환경 오염도 심한 제품이며 큰 바퀴 때문에 불안하며 위협감도 준다"고 공격하면서 새 국면을 맞았다.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감독.배우들이 반대 캠페인인 디트로이트 프로젝트에 속속 가세했고, 그동안 SUV에 내심 불만을 가졌던 수십만 미국인들도 동조하고 나섰다.

프로젝트팀은 지난해 11월 '예수님은 결코 SUV를 몰지 않는다'는 TV광고를 선보였고 이어 '기름을 많이 잡아먹는 SUV를 몰면 석유수입을 늘려 결국 중동 테러리스트를 도와주는 꼴'이라는 인신공격성 TV광고까지 등장했다. '넓게 살고 작게 타자'라는 차량 범퍼 스티커도 거리에 넘쳐난다.

이렇게 되자 눈치만 봐오던 SUV차량 운전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개인 자유침해이며 갈등을 조장한다''순수한 소비자를 테러 후원자로 낙인 찍는 매도 캠페인'이라는 독자 투고가 신문사에 넘쳐 흘렀다. 뉴욕.로스앤젤레스의 일부 방송국들도 10일 SUV 반대캠페인 TV 광고를 더 이상 받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논쟁은 미국에서 늘 반복돼 온 '상업.소비문화 대(對) 자연.환경주의'대결의 재판이지만 거창한 주장보다 담배.모피 코트.패스트푸드 논쟁에서 보듯 생활의 소품을 통해 사회적 이슈를 논하는 미국적 특성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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