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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나들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하늘색 수단긴치마 저고리에 은색고무신을 받쳐 신었다. 머리도 한복에 어울리도록 국화꽃잎처럼 올려 빗고. 나도 이제 여인이 된 것일까? 결혼 후 처음으로 차리고 나선 모습이다.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나만 보는 것 같은 느낌. 나는 사뭇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으로 얼굴이 달아오른다.「쇼윈도」에 비친 나의 모습이 나 아닌 딴사람같이 아름답다.
문득 옛날의 소꿉친구라도 나타났으면…. 남자친구면 무어라 인사를 건넬까.
어쩌면 아무도 내게 관심없이 밀려가고 밀려오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늘이 너무 높기 때문일까. 화사한 차림으로 나는 허전하게 걸어본다. 단발머리에 교복 입은 여학생이 떼지어 밀려온다.「베이지」색으로 알맞게 탄 살결에 젊음과 웃음이 터질 듯 담겨진 여대생들의 얼굴….
나는 긴 치맛자락을 여미며 나를 감싸본다. 새로운 생명과 어머니와 메시꺼움과 환희 같은 것이 가슴 가득히 밀려온다. 싸리비 자국 같은 가을구름 아래 풋밤이 익어가듯 나는 어떤 보람을 살찌워 보구 싶다. 남이 무어라든.(이정순·26세·주부·서울 북아현동 산1의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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