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여성을 위한 이야기|문학의 장|오화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그래, 문학이란 무엇이냐고 물었지요? 지금 당장 정의를 내리라는 말입니까? 조급히 굴면 안됩니다. 왜 저「조급한 마음」이라는 희곡이 있지 않습니까? 조급한 마음의 소유자는 실패한다는 대사가 나오지 않던가요? 그 대사가 작품의 이름이 되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이 차가 무슨 찬지 아십니까?「코피」를 모르시는 바보는 아니라고 얼굴을 붉힐 테지만 아마 당신이 아는 지식이란「코피」란「브라질」산이 제일 좋다는 것밖에 없을 겁니다.
나도 그 정도밖에는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 정도의 지식밖에 없다고 해서 당신과 내가 부끄러워할 것은 없습니다. 지식이 곧 문학은 아니거든요. 지식이 풍부하다고 해서 인생을 아름답게 사는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그 지식의 터전 위에 이루어진 예술이거든요.
그런데 지금 당신과 내가 이렇게 마주앉아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주고받듯이 문학은 언제나 인간의 대화에서 빚어지는 열매입니다. 대화란 반드시 말을 주고받는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요. 내가 말하는 것은 인간관계라는 뜻입니다. 상대적인 관계가 없다면 상대적인 가치관이 나올 수 없습니다. 어떤 가치를 부여할 수 없다면 그것은 당신이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는 위대한 문학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이 차를 마신다는 사실만 가지고는 문학이 될 수 없지요.
이 차의 원산지와 수입경위와 가격을 따져본다고 해서 인생에 이렇다할 가치를 부여했다고는 할 수 없지요. 그러나 차가 하나의 동기가 돼서 놀라운 상상의 세계를 창조해 낼 수 있거든요. 우리가 흔히 창조적 상상이란 말을 많이 쓰지만 문학이란 현실에서 소재를 얻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작가에 의해서 선택될 것이고 이 선택된 소재를 표현하는 언어의 힘이 필요하게 된단 말입니다. 가령 누가 물건을 훔쳤다고 합시다.
물건을 훔치는 것은 나쁜 일이니까 법에 의해서 처벌을 받아야 된다는 것은 상식 이전의 진리지만 이러한 절도행위가 마침내 위대한 인간정신을 나타냈다면 그것은 곧 문학의 진리가 되는 거지요. 당신은 「레미제라블」을 읽고 며칠 밤이나 잠을 못 잤다고 하셨지요. 그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그 작품의 주인공에게서 숭고한 정신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까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문학이라고 했을 때 당신은 의아한 시선으로 나를 응시했지만 우리 주변의 현실에는 행복한 것보다는 불행한 사실이 많고 그 불행 속에서 훌륭한 인간상을 발견했을 때 아름다운 세계로 변하는 것입니다. 작가는 바로 이러한 갸륵한 일을 하는 예술가란 말입니다. 사실 작가에게는 무엇을 쓰느냐 하는 문제보다도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어떻게 써야 되느냐 하는 문제 가운데는 인생에 대한 풍부한 이해와 가치관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다른 말로해서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현실 그대로 복사하는 것이 아니고「가능한」세계로 이끌어 올리는 것이 예술가의 임무라는 말입니다. 당신은 작가 되기를 바라는데 사람이란 누구나 모방의 본능을 타고나기 마련이고 이 모방이 언어를 통해서 이루어질 때 문학이 되는 거지요.
그렇다고 해서 덮어놓고 쓰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문학에 있어서는 내용이 중요한 것은 물론이지만 형식이 중요하단 말입니다. 시와 소설이 그 형식에 있어서 다르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아는 일이지만 희곡 역시 시나 소설과는 다르지 않습니까? 당신은 늘 일기를 씁디다만 일기나 수기에서도 아름다운 인간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소설은 역시 소설의 형식을 제대로 갖추고 씌어진 것이지요. 저「죄와 벌」「전쟁과 평화」같은 작품의 괴로워하는 숭고한 영혼들은 인류역사가 지속하는 한 영원히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인물들이지요. 그들에게서 삶의 보람을 배우고 생명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필자 영문학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