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반려동물 의료분쟁…사고 나도 보호받을 법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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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현직 가정의학과 의사인 이준원(46)씨는 지난달 24일 4살 반려견 ‘짱아’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동물 치아 치료를 전문으로 한다는 한 동물병원 수술방에서였다. 의학 지식이 있는 이씨는 동물병원이 짱아에게 어떤 처치를 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진료기록을 요구했다. 하지만 동물병원 측이 건넨 자료에는 ‘응급처치 진행(즉시 삽관, CPR 진행 및 응급 약물 투여)’라는 간략한 내용이 담겼다.

이씨는 “짱아가 어떤 의료행위를 받다가 쓰러졌고, 쓰러진후 어떤 생체정보에 근거해 무슨 약품들을 썼는지 등을 알 수가 없어 나중에라도 만들어 달라고 했지만 아직까지 답신이 없다”며 “사람에게 발생한 의료사고보다 반려동물 의료 분쟁이 더 싸우기 힘들다”고 말했다.

부실한 법체계 때문에 의료 서비스를 받는 반려동물들이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의료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반려동물은 진료기록을 발급할 의무가 없다. 현행법상 반려동물은 ‘재물’이기 때문에 수의사에 형사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실정이다.

국내 반려동물 관련 통계.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국내 반려동물 관련 통계.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19일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 수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관련 의료분쟁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가장 빈번한 분쟁 원인으로는 진료기록부 발급 문제가 있다. 사람에 적용하는 의료법은 치료나 수술 도중 환자가 죽거나 다치면 정확한 원인과 의사의 과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모든 진료기록을 발급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수의사법에는 반려동물의 진료기록부를 발급할 의무가 따로 없다.

반려동물 진료기록부 발급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요구는 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국회에서도 수의사법을 개정해 제도를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수의사계의 반대에 부딪혀 있는 상황이다.

대한수의사회는 “진료기록부 발급이 의무화되면 증상과 병명에 따른 사용 약품과 진료 방법이 인터넷 등을 통해 공공에 노출될 것”이라며 “마취제·호르몬제 등의 오남용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반려동물 가구 외에도 축산농가는 가축에 대한 자가치료가 법적으로 허용돼 있기 때문에 진료 기록을 섣불리 따라 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전문병원’이란 명칭에도 주의해야 한다. 의료법상 전문병원은 특정 질환에 대해 난이도가 높은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병원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정하게 돼 있다. 그러나 수의사법에는 이런 전문병원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 또 민법상 반려동물은 재물로 보기 때문에 수의사에 대한 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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