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일자리에 25조 쏟고도…실업률 17년만에 최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세종시에서 24시간 해장국집을 운영하는 김덕환(55)씨는 최근 직원 2명을 내보냈다. 16.4%나 오른 최저임금에 급여를 맞춰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7월부터 주당 근로시간이 52시간으로 단축되는 것도 고민거리다.

최저임금 충격 도소매, 숙박·음식 #일자리 11만6000개나 줄어들어 #“나랏돈 푸는 땜질식 처방 대신 #기업 경쟁력 높이는 대책 필요”

직원들이 주 66시간씩 일해 산술적으로는 근로시간 단축 시 사람을 더 뽑아야 하지만 여력이 없다. 김씨는 “사람을 더 뽑기는커녕 내년에도 최저임금이 폭등하면 1~2명을 추가로 줄여야 할 판”이라며 “가족처럼 지내온 직원들을 자르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고용지표가 두 달 연속 최악의 수준으로 추락하면서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자리 추경(추가경정예산) 등을 통해 아무리 나랏돈을 쏟아부어도 현재의 고용정책 기조가 그대로 유지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통계청이 11일 발표한 2018년 3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3월 전체 취업자 수는 2655만5000명으로 1년 전보다 11만2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취업자 수 증가 폭(전년 동월 대비)이 10만4000명으로 8년 만의 최소치였던 2월에 이어 2개월 연속 ‘고용 쇼크’다. 월별 취업자 수 증가폭은 지난해부터 올해 1월까지는 20만~40만 명 선을 유지해 왔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3월에는 특히 편의점이나 치킨집 등 영세 자영업자가 많아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크게 받는 업종의 취업자 수가 줄었다. 지난달 도·소매업과 숙박 및 음식점업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11만6000명 감소했다. 3월 전체 실업자 수는 125만7000명, 실업률은 4.5%까지 치솟았다. 3월 기준으로 각각 2000년과 2001년 이후 가장 나쁜 수치다. 청년층(15∼29세) 실업률도 11.6%에 달했다. 정부는 지난해 일자리용 본예산 17조736억원과 일자리 추경 7조7000억원을 편성했다. 정부는 이 돈을 마중물로 삼아 일자리를 대폭 늘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올해 고용성적표를 보면 지난해 추경이 성공작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은 작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추경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정부 정책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다. 최저임금을 큰 폭으로 올릴 경우 고용주들이 부담을 느껴 근로자를 해고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는 계속 나왔다.

취약계층 보호를 명분으로 하지만 도리어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줄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도·소매업 등의 취업자 수가 줄었다는 건 이런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미 지난해 7월부터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받는 숙박, 음식업 쪽에서 고용이 감소했다”며 “최근 들어 이런 현상이 다른 업종으로 번지는 양상이 나타나고, 앞으로 계속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층 실업률 11.6% 심각…여권서도 “최저임금 부작용 최소화해야” 

최저임금 인상뿐이 아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신규 고용을 줄여 결과적으로 청년들의 취업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게 요지였다.

김덕환씨 사례에서 보듯 근로시간 단축도 ‘일자리 나누기’라는 도입 취지와 달리 임금 하락이나 추가적인 고용 감축으로 이어질 소지가 다분하다.

반면에 일자리를 근본적으로 늘릴 수 있다고 평가되는 노동개혁 등 구조개혁과 혁신성장 전략은 거의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번 달에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3조9000억원 규모의 청년 일자리 추경안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가 구조개혁과 성장정책을 제대로 추진하지 않고 기존 정책에만 집착할 경우 아무리 대규모 추경을 편성해도 근본적인 일자리 늘리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관련기사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 방향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금액이 꼭 1만원이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라며 “고용의 핵심은 지속가능성, 즉 고용의 질이기 때문에 개별 정책의 효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경제 토대를 튼튼하게 하는 중장기적 거시정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일본은 ‘잃어버린 20년’ 동안 구조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해 그 상처가 프리터족(아르바이트로 생계에 필요한 정도의 돈만 버는 청년층) 등의 형태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며 “한국도 구조개혁을 단행하지 않으면 본질적인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세돈 교수는 “나랏돈을 풀어 일자리를 지탱하는 땜질식 처방 대신 기업 경쟁력을 높여 일자리를 늘리는 근본적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내에서도 기존 정책의 부작용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나타나고 있다. 이목희 신임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은 11일 야당 대표를 예방한 자리에서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하며 국민적 동의에 따라 올려야 한다”며 “이제는 민간 부문 일자리 창출에 노력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5월에 민간 부문을 반영한 일자리 대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종=박진석·심새롬·장원석 기자 kailas@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