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한·태·비방어 긴요

    미 국무·국방성관리 안보증언내용 다음은 6일 미 하원 아-태 소위에서 행한 미 국무성과 국방성 고위관리들의 아시아관계 안보증언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대한 미국

    중앙일보

    1984.02.07 00:00

  • 육군 특공부대 전후방에 포진

    육·해·공군은 20일 상오 각각 주요지휘관 회의를 소집, 북괴의 도발에 대한 대응책을 강구하고 작전능력 강화방안을 논의했다. 각 군은 이번 회의에서 북괴가 미얀마암살폭파사건 이후에

    중앙일보

    1983.12.20 00:00

  • "북괴도발 한-미군 공동대처"

    전두환대통령은 8일 상·하오에 걸쳐 주한미2사단과 해병○○부대·육군○○부대등 한미군 전방부대를 시찰, 장병들을 격려하고 연말연시에 경계를 더욱 강화하도록 당부했다. 전대통령은 이날

    중앙일보

    1983.12.09 00:00

  • 북괴군초소 1km전방까지 시찰

    시찰 「레이건」대통령이 탑승한 방탄리무진이 비무장지대 (DMZ)의 콜리어 관측소로 향하자백악관 경호요원들이 리무진의 전후좌우로 바짝 붙어서 함께 걸어갔으며 리무진 바로 뒤에는 특수

    중앙일보

    1983.11.14 00:00

  • 북괴만행 응징하겠다|레이건, 국회연설 군사훈련 상호삼관수락을

    「레이건」미국대통령은 12일 국회본회의에서의 연설을 통해『미국은 침략을 반대하고 태평양지역에 평화를 강화할것을 다짐하는 동시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굳게 지킬것』이라고 말했다. 25분

    중앙일보

    1983.11.12 00:00

  • 긴장고조땐 주한미군증강|레이건회견 한-중공관계 개선 모색해야

    【워싱턴=장두성 특파원】「레이건」미국대통령은 7일『주한미군을 증강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될 경우 주한미군병력을 증강하겠다』고 말했다. 「레이건」대통령은 이날 한

    중앙일보

    1983.11.08 00:00

  • (62)프란체스카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12월 10일. 우리는 오늘 「올리버」 박사가 12월 3일에 적어보낸 편지를 받았다. 『존경하는 이승만 대통령각하 내외분께. 타협에 대한 말이 많이 오가고 있습니다만 저는 우리 미

    중앙일보

    1983.10.24 00:00

  • 평양의 중공편향을 우려 소, 대북괴접근 적극 시도

    다음은 미하원 청문회에서 행한 「브라운」 국무차관보와「켈리」 국방차관보의 증언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브라운」미국무차관보=KAL기 사건은 소련의 ⓛ군사적 협박 ②무력사용 ③신뢰감

    중앙일보

    1983.10.20 00:00

  • (3798)|(251)|첫 면회날

    생도생활의 마지막날이 되고만 24일밤 생도들은 설렘 속에 거의가 밤잠을 설쳤다. 6월의 넷째 일요일이었던 25일은 입교 후 처음으로 허용된 면회날이었기 때문이다. 이날의 북괴 남침

    중앙일보

    1983.08.24 00:00

  • (3791)제79화 육군사관생들(244)

    66년1월1일하오8시25분.「험프리L 미국부통령이 미공군특별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내렸다. 아무리 우호관계가 깊은 국가간에도 정초에는 특사나 고위관리를 남의 나라에 파견하지 않는 것

    중앙일보

    1983.08.16 00:00

  • 6·25외 이승만대통령|프란체스카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워커」장군은 우리에게 경무대가 아직도 위험하니 잠만은 서울 필동에 있는 「한국의 집」에서 자도록 하라고 제의해 왔다. 대통령은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쪽이

    중앙일보

    1983.08.10 00:00

  • 북괴군 완강히 저항

    「무초」대사와「노블」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하루빨리 서울에 돌아가기를원하고있었다. 신국방장관은 서울을 탈환하는데 「맥아더」 강군이 예상했던것보다 훨씬 완강한 적의 저항을 받아 치열한

    중앙일보

    1983.08.06 00:00

  • 제79화 육사졸업생들대통령 방미

    박정희대통령은 65년5월16일 「존슨」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박대통령은 61년11월 당시 최고회의의장시절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한데 이어 63년11월에는 「케네디」대통령

    중앙일보

    1983.08.06 00:00

  • (11)외사촌동생 상봉한 귀순용사1호

    휴전후 최초로 사선을 넘어 자유대한으로 남하한 귀순용사1호 정형진씨(53·서울 전농동)가 1·4후퇴때 헤어졌던 외사촌동생과 32년만에 상봉했다. 지난22일하오 KBS 공개홀에서 외

    중앙일보

    1983.07.25 00:00

  • (23)프란체스카 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8월 27일, 일요일. 일단의 유엔군 대표들이 진해로 왔다. 상오 11시쯤 왔던 이들은 회의를 한후 하오 1시에 마산으로 떠났다. 우리는 점심을 싸들고 부두로 나가서 바닷가에서 식

    중앙일보

    1983.07.23 00:00

  • 헤어질때와 만날 때 이산30여년…애절한 사록들|김창선·창벽씨 형제

    『동족상잔의 비극이 바로 우리 형제의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같습니다』 6·25동란중 형은 대한민국 경찰로, 동생은 인민군 전사로 참전해 총부리를 겨눠야 했던 비극의 형제가 37년만

    중앙일보

    1983.07.21 00:00

  • 6·25와 이승만대통령

    7월27일 새벽, 야크기의 공습이었었다. 적기의 대구공습이 잦아지게되자 나는 대통령에게 야간민정시찰을 중단하는게 좋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요즘 저녁식사후엔 대구거리와 골목·시장을

    중앙일보

    1983.07.05 00:00

  • 6·25와 이승만 대통령|프란체스카 여사, 비망록 33년만에 처음 공개하다|적의 부산 압박소식에 낙담

    적은 목포와 대구를 향해 점점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도 미군들은 적의 전진루트에 비행기를 출격시켜보면 적군이고 탱크고 하나도 보이는게 없다고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아직까지도

    중앙일보

    1983.07.04 00:00

  • (3752) (205)장창국|학도 의용군

    『나라가 위태로울때 학생들이 가만히 앉아있으면 그 민족은 망한다』는 금언이 있다. 6·25가 터지자 각급학교 학생들은 교복과 교모를 착용한채 자원해서 군문으로 뛰어 들었다. 계급도

    중앙일보

    1983.07.01 00:00

  • (3751)살아있는 전사-제79화 육사졸업생들(204)

    만3년에 걸친 한국전쟁은 보는 이의 친각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나겠지만 북괴가 휴전선을 넘어와 아군이 대전까지 후퇴할 때까지를 서전기로 본다면 생도1기생들이 임관되고 육군본부가 대구

    중앙일보

    1983.06.30 00:00

  • (3739) 제79화 육사졸업생들(192) 생도1기 전선투입

    50년6월25일. 토요일 밤늦게부터 내리던 비가 그친 서을거리에는『국군장병은 즉시 원대복귀하라』는 확성기를 장치한 헌병 지프들이 거칠게 질주하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도 정규방송을 중

    중앙일보

    1983.06.16 00:00

  • (3738)제79화 육사졸업생들(191)|졸업 앞둔 생도 1기

    육사생들은 사관학교에 입교하면 『화랑대에서 국군묘지까지』라는 말에 친밀감을 느끼기 시작해 이 말이 가슴 깊숙이 와 닿을 무렵 육군소위로 임관, 학교를 떠난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중앙일보

    1983.06.15 00:00

  • (3723)제79화 육사졸업생들

    9기생과 6·25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9·28수복 당일 중앙청에 맨 먼저 태극기를 다시올린 해병박정모소위 (56·대령예편·현신아조선대표)외 무용담이다. 박소위는 당

    중앙일보

    1983.05.28 00:00

  • (3722) 제79화 육사졸업생들(175) 스미드 기동부대

    9기생 정훈장교 가운데 노헌호소위(56·중령예편·총무처 기획관리실장·한국관당공사 홍보교육담당이사·현동미실업부사장) 는 6·25 최초의 미군 참전부대인「스미드 기동부대」의안내역으로

    중앙일보

    1983.05.27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