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289)|개성의 함정(1)|휴전회담의 개막(3)

    1951년7월8일, 쌍방군사령관의 합의에 따라 10일에 열리는 휴전회담 제1차 본회의를 준비하기 위하여 양측 연락장교들이 개성근교의 내봉장(주=6·25전 이현재씨의 개인저택)에서

    중앙일보

    1972.02.11 00:00

  • 경호도 없이 암행 민정시찰

    박정희 대통령은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김시진 민정수석비서관만을 데리고 시내 번화가를 한바퀴 돌아봤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의 수석비서관들과 저녁을 나눈 뒤 김 비서관의 승용차를 타

    중앙일보

    1971.12.25 00:00

  • 초기 가수들의 인기측정은 물론 박수의 많고 적음이었으나 기생전성시대인 1930년대 초에는 기생들의 인력거가 가수들의 인기를 측정하고 있었다. 이 무렵 평오등 큰 도시에 가서 공연을

    중앙일보

    1971.12.20 00:00

  • (331)가요계 전이면사(11)고복수(제자는 필자)

    초기의 가수들은 대개 학벌이 없었다. 다만 선천적으로 타고난 목소리를 작곡가들이 일찍 알아주는 것이 가수 데뷔의 길이기도 했다. 1931년에 가요계에 등장한 남인수도 학벌이나 체

    중앙일보

    1971.12.13 00:00

  • "쪽지가 춤추는 남북회담

    가족을 찾기 위한 남북회담 본 회담준비를 위한 여덟 차례 예비회담이 계속됐지만 한 문제에서 제자리걸음하고 있다. 걸려있는 문제는 출발했던 때의 뜻 그대로 가족을 찾자는 한적의 추장

    중앙일보

    1971.11.13 00:00

  • 남과 북의 대화

    마을을 가다듬어도 일구의 불안에 비슷한 느낌을 거부할 수 없는 채로 역사의 모퉁이에 끼어서 나의 인간으로서의 최선을 또 다짐한다. 벌써 남북적십자예비회담이 시작된지도 2삭을 넘어섰

    중앙일보

    1971.11.02 00:00

  • (293)미소공동위원회(5)|문제안

    공위가 시작될 때 「하지」장군은 17일에 「코뮤니케」를 통해서 회의 진전내용을 알려주겠다고 말했지만 공위 이틀째인 이날 아무런 발표도 없었다. 한국사람이라고는 한 사람도 참가함이

    중앙일보

    1971.10.29 00:00

  • 남북 예비회담 개막

    【판문점=임시취재반】통일의 길을 향한 먼길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20일 상오11시 판문점 중립국감시위원회 회의실에서 남·북 적십자의 첫 예비회담이 열려 56분 동안 회담했다. 대한

    중앙일보

    1971.09.20 00:00

  • (224)|거제도 폭동(2)|남과 북의 포로 수용소(16)

    미군이 공산포로를 다루는데 있어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일반포로」와 「투항귀순자」를 구별하지 않고 동일시했다는 점이다. 한국전쟁과 같은 이념 전에서는 이 두 가지 개념은 엄격히

    중앙일보

    1971.09.06 00:00

  • 남북적십자대표 3차 대좌

    【판문점=임시취재반】대한적십자사는 30일 낮 12시 판문점에서 세 번째로 북한적십자 측과 8분 동안 만나 지난27일 북 적에서 제안한바 있던「예비회담 개최일자 수정에 대한 제안문서

    중앙일보

    1971.08.30 00:00

  • 번지는 남북악수…수행원들도

    【판문점=임시취재반】파견 원들은 이제 구면이 되었다. 30일 낮 12시 세 번째로 만나는 자리에선 서슴없이『신임장교환은 그만둡시다』고 말을 건네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나누었다. 파

    중앙일보

    1971.08.30 00:00

  • 남-북 적 대표 두 번째 대좌|9월 예비회담 제의문서 수교

    【판문점=임시취재반】26일 낮 12시 대한적십자사는 판문점중립국감시위원회회의 실에서 북한적십자 측과 접촉, 지난 21일 최 두선 총재가 제의했던『9·28 예비회담제기에 관한 문서』

    중앙일보

    1971.08.26 00:00

  • (932)남북대좌의 소감

    8월20일 낮12시. 이로부터 4분간을 내 34년 생애에서 가장 긴시간같이 느껴졌다 .나는 19일하오 최두선 총재로부터 파견원으로 가라는 말을 듣자「메신저」의 역할이려니하고 간단히

    중앙일보

    1971.08.23 00:00

  • 판문점 남-북 대좌 논평

    남-북한 대표들은 지난20여 년 동안 서로 별로 대화를 하지 않았다. 공산북괴가 남침하여 미국과「유엔」군을 전화에 끌어 들인지 20여 년 동안 말이다. 이제 이 양단 된 나라의

    중앙일보

    1971.08.21 00:00

  • 판문점 남-북 대좌 논평

    50년서부터 3년간이나 계속되었던 치열한 전투, 끊일 새 없었던 비무장지대에서의 충돌, 후방교란 작전과 간첩활동 등으로 점철되었던 26년간의 적대관계 끝에 남-북은 이제 막 대화

    중앙일보

    1971.08.21 00:00

  • 「단 4분」에 불 뿜은 취재 전|판문점「남-북 대좌」낙수

    단 4분 동안에 끝난 남북대화를 취재하기 위해 신문·방송 등 보도기관은 20일 하루동안 불 뿜는 열전을 벌였다. 26년만에 교환된 악수의 한 장면, 『안녕하십니까』하는 인사말 한마

    중앙일보

    1971.08.21 00:00

  • (930)윤일선|인도와 평화의 대좌

    분단 4반세기만에 우리민족이 그토록 갈망하던 대화의 광장이 마련됐다. 그것도 내가 10여 년이나 몸담고 있던 대한적십자사에 의해「가족 찾기 운동」이 제의되었고, 북으로부터는 반응을

    중앙일보

    1971.08.20 00:00

  • 남북 적십자대표 첫 접촉

    【판문점=임시취재반】분단 26년만에 남북이 대좌했다. 20일 낮 12시「자유의 다리」를 건너 판문점에 이른 대한적십자사 파견 원 이창열·윤여훈 씨 2명과「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

    중앙일보

    1971.08.20 00:00

  • "안녕하십니까" 26년만의 남-북 악수

    온 국민의 눈과 귀가 판문점에 쏠렸다. 20일 정오, 남북한이산가족 찾기 운동을 열기 위해 만난 남-북 적십자사 파견 원들은 판문점중립국감시위원단 회의실에서 탁상을 사이에 두고 마

    중앙일보

    1971.08.20 00:00

  • 채비만전…남-북 접촉 24시간 전|대한적십자사와 판문점 주변

    온 국민이 주시하는 가운데 20일 낮 12시 판문점에서 북한적십자사 측과 접촉하게된 대한적십자사는 접촉 24시간을 앞둔 19일 상오 현재 모든 준비를 갖추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 싸

    중앙일보

    1971.08.19 00:00

  • 판문점에 쏠린 이목

    판문점엔 또다시 온 겨레와 세계의 관심이 쏠리게 됐다. 20일 판문점에서 남북적십자대표가 만나기로 되고 여기서 북한적십자사가 서한을 우리측에 전달하게되자 『20일 정오의 판문점은

    중앙일보

    1971.08.16 00:00

  • 통일구상의 진취적 전환

    박정희 대통령의 이번 8·15경축사는 적십자사간의 남북회담이 열리게된 극적인 사태진전 속에서 발표된 만큼 그 지니는바 뜻은 어느 때보다도 크다고 말할 수 있다. 『평화통일만이 우

    중앙일보

    1971.08.16 00:00

  • 제네바 회의 54년4월26∼6월15일

    1954년 한국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해 열린 「제네바」회담은 비록 단둘만의 대좌는 아니었지만 남과 북이 전쟁후 처음으로 접촉을 가질 수 있었던 기회였다. 자유진영에서 참전 15개

    중앙일보

    1971.08.13 00:00

  • 수세로 전환한 미 중공 전략|로저즈 국무장관의 중공 유엔 가입지지 천명

    「중국 대표권 문제」에 관한 「로저즈」 미 국무장관의 정책 발표는 결국 ⓛ중공의 유엔 가입을 단순 과반수로 통과시키고 ②중화민국의 추방을 「중요 사항 지정」으로 방지하는 동시에 ③

    중앙일보

    1971.08.03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