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조 효심 담긴 유적 화성행궁 복원된다
조선조 22대 정조 때 건축된 경기도 수원에 있는 화성행궁 복원사업이 민간단체 등 향토유지들에 의해 끈질기게 추진되고 있다. 화성행궁은 조선조 행궁 가운데 최대규모를 자랑했던 6백
-
소련 영사 처
민비가 시해된 을미사변이후 고종은 늘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일본의 한 외교문서에는 당시 고종의 심경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이 태왕(고종)께서는 민비의 횡사 후 경복궁
-
왕조의 비운 짊어진 파란의 일생
조선조 마지막 황태자비였던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가 30일 타계함으로써 정략결혼까지 해야했던 한일간 얼룩진 역사의 한 장이 조용히 막을 내렸다. 20세기 초 한일합방이라는 거대한 역
-
「민비」의 진실
그날 밤 고종은 왕세자와 함께 침전인 건청궁 곤령전에서 떨고 있었다. 흉도 들은 방문을 부수고 들어와 왕을 붙잡고 왕후(민비)의 폐출을 요구하는 문서를 내밀고 서명하도록 위협했다.
-
아라사
1896년 2월11일 새벽 경복궁 영추문을 빠져나오는 몇 개의 교자(교자)가 있었다. 궁녀들이 타는 교자라 수문군들도 그대로 통과시켰다. 이 교자행렬은 곧바로 정동의 러시아공관으로
-
(14)침략의 제물|발굴자료와 새증언으로 밝히는 일제통치의 뒷무대
조선왕실 최후의 사람들은 민족과 아픔을 함께 하지 못했다. 오히려 민족의 한을 깊게 만들기까지 했다. 그 표본이 영친왕으로 일컬어지는 최후의 왕세자 이은이다. 이은의 일본화 과정은
-
(9) 대한제국의 최후
l910년8윌29일 전국각지의 일본수비군들이 시가행진을 벌였다. 서울거리에는 헌병과 순사가 30m간격으로 도열해 있었고 단 두 사람만 모여도 엄중히 취조해 흩어지게 하는 삼엄한 경
-
드라머
□…KBS 제1TV 『대하드라머 풍운』 (12일 밤7시50분)=「길고 무더운 여름」. 한미수교조약의 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한 청국의 마건충과 정여창은 고종과 접견한 자리에서 영국·
-
삼전도
삼전도는 서용 강동구 송파동의 지명이다. 그러나 그곳은「한국인에게 가장 부끄러운 곳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민족사상 처음 외적에 항복한 자리다. 삼전도의 치욕은
-
민비 시해-이선근
『일제가 저지른 민비 시해사건은 소위「사무라이」정신을 근간으로 한 일본 제국주의의 본질이 얼마나 남달리 비겁하고 잔인무도 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지요.』189
-
고종이 은신했던 곳으로 추정
야사로만 전해오던 아관(러시아공사관·사적 제253호·서울 정동 15의3) 의 지하통로와 밀실이 서울시와 문화재관리국이 러시아공사관의 유적발굴작업을 하던중 16일 발견됐다. 공사관
-
국장
세상에 장례의 식만큼 조심스럽고 까다로운 행사도 없을 것이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가문마다 다르고 또 시대에 따라 그것은 변해 왔다. 멀지 않은 조선시대만해도 국장쯤 되면 그 의
-
종묘제례 의상은 잘못됐다|석주선 교수 (동덕여대) 고증 강좌 주장
지난 75년5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종묘제례의 면류관과 면복이 격식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견이 일어 관계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종묘제례는 지난 5월2일 서울 종묘에서 문화제로
-
(1612)제50화 외국유학시절(속)(8)순종 추모식
내가 2학년에 진급하여 학기초를 맞이한 1926년 4월25일, 순종황제께서 승하하셨다는 놀라운 비보가 전해왔다. 그렇잖아도 물설고 낮선 이국 땅에 와서, 그것도 우리를 식민지로 삼
-
(143)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영친왕 내외분은 l945년 4월에 은혼식을 거행하였으므로 꼭 4반세기만에 금혼식을 하게된 셈인데 1945년은 태평양전쟁 말기 즉 해방이 되던 해로 동경은 B-29의 공습으로 폐허가
-
(89) 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당시 영친왕이 귀국을 주저하게된 또 한가지 이유가 있었다. 소위 왕위계승 문제였다. 봉건시대와 달라서 군주가 직접 정치를 하는 것도 아니요, 1910년 한일합병과 더불어 왕실은 한
-
(52)-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이때 송병준은 『신에게 두 가지 대책이 있사옵니다만 도저히 청허 하시지는 못할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무엇이고 말해보라.』 『이번 해아 밀사 사건은 폐하께서 잠깐 실수를 하신 것
-
(51)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이준·이상설·이위종의 세 밀사는 고종황제의 뜻을 받들고 민족과 조국을 위해서 필사의 노력을 다하였으나 약소 국가의 비애로 아무 성과도 얻지를 못하게 되자 결국 이준 열사는 분통이
-
(39)해방에서 환국까지
덕혜옹주가 일본으로 간지 꼭 l년만에 순종황제가 세상을 떠났다. 1874년2월8일 창덕궁 관물헌에서 탄생하여 1926년4윌25일 대조전에서 서거하니 향년이 52세로 고종황제 보다도
-
(10)해방에서 귀국까지
영친왕이 가장 염려하던 분 중의 한사람인 윤 대비(순종황제 비)는 어떻게 되었는가? 해풍 부원군 윤택영씨의 큰 마님으로 열 세살 때에 황태자비로 들어가서 나중에 황후가 된 분이다.
-
(1)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구왕실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 이은씨가 지난 63년 11월22일 환국이래 줄곧 병상에 누워 있다가 약 6년반만인 지난 1일 73세를 일기로 한 많은 세상을 떠난 것은 이미 널리
-
영친왕의 생애|김을한
영친왕 이은씨가 필경 세상을 떠났다. 1963년 11월22일 귀국하여 70년 5월1일에 세상을 떠났으니 비록 병석에서나마 약 6년반동안을 그리운 조국에서 마지막 생애를 보낸 셈이다
-
비운의 일생…이조 최후의 왕세자|영친왕 이은씨…유명달리하던 날
비운의 왕자 영친왕 이은 씨는 70평생을 두고 가슴에 맺힌 숱한 사연을 한마디도 남기지 못한채 운명했다. 11살때 불모로 일본에 갔다가 63년11월에 환국한 뒤 줄곧 의식이 흐려진
-
(80)가슴아픈 백년한
민갑완님은 세상을 며났다. 양이라 부르기에는 너무나 과년했고 여사라 부르는것은 지극한 실례가 될것갈아 「님」이라 부른다. 얼마전 일이다. 그가 천주교에 입교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