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봉급자 우롱하는 세제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봉급생활자들에게서 거둬들인 근로소득세가 정부의 당초 세입(歲入)예산보다 훨씬 많았다는 발표는 봉급생활자들의 분노를 터뜨리게 한다.

재정경제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는 당초 예산을 56%나 웃도는 2조3천3백97억원의 근소세를 더 거뒀다는 것이다.

이 같은 세수(稅收) '초과달성' 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다.

봉급생활자가 '봉' 이냐는 불만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는 다른 세금과의 형평성 문제와,징세여건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행정의 문제가 그것이다.

근소세에 비해 자영업자들에게서 거둔 종합소득세는 예산상 전망치에 못미쳤다(-8.7%)는 집계는 정부가 뭐라 변명하든 직장인들을 납득시킬 수 없다.

지난해 근소세 징수여건의 변화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연봉제와 성과급제가 급속히 확산된데다 종전엔 회사가 세금을 부담하던 판공비.기밀비 등이 연봉에 합산되면서 고액연봉자들이 급증한 상황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며칠 전에 발표한 내년도 세제개편안에 근소세 개선방안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근소세율을 10%정도 낮추고 면세점을 소폭 올려주기로 했다지만 이 정도로는 내년에 또다시 근소세 초과징수 시비에 휘말릴 것이 뻔하다.

우리는 이제 여소야대(與小野大)로 바뀐 국회가 정부의 세제개편안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근소세제를 전면 재검토하기를 촉구한다.

세율뿐 아니라 현재 소득의 크기에 따라 최저 1천만원 미만에서 최고 8천만원 초과까지 4단계로 나누고 있는 근소세 체계도 현실화해야 하며, 봉급생활자들의 경비성 지출을 폭넓게 과세대상에서 빼줄 수 있도록 소득공제제도도 손질이 필요하다.

자영업자와의 형평과세 문제를 풀려면 세무행정 차원의 분발이 전제돼야 한다.

세금이 원천징수되는 봉급생활자들과 달리 자영업자들은 세제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세무공무원들이 끊임없이 현장 확인을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언론사 세무조사에 임했던 의지와 정성만 있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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