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불신 업고 돌풍… 인기는 잠깐, 조직 열세로 쓴 맛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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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후 한국 대선사의 공통된 특징은 제3후보가 끊임없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기존 정당에 대한 국민 불신을 기반으로 한 이들은 15~20%가량 득표율로 거대 정당 후보들을 압박하며 대선 판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역대 선거에서 제3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한 경우는 없었다. 기존 정당의 막강한 조직력 앞에 모두 무너졌다. 하지만 최소한 특정 후보가 1등이 안 되게 하거나 1등이 되게 만드는 변수 역할을 했다. 지난 9월 ‘주어진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겠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후보도 66일 만에 뜻을 접었다. 안 후보는 지난 1년간 이번 대선의 가장 강력한 변수였다.

대표적인 제3후보로는 92년 정주영·박찬종, 97년 이인제, 2002년 정몽준, 2007년 이회창·문국현 후보를 꼽을 수 있다.

92년 14대 대선에서 정주영 후보는 16.3%, 박찬종 후보는 6.4%를 얻었다. 1, 2위였던 김영삼(42%), 김대중(33.8%) 후보의 득표 차는 8.2%포인트에 불과했다.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92년 초 통일국민당을 창당하고 경제 대통령, 통일 대통령을 자임했다. 그는 “난 내 돈이 너무 많아 얼마인지 정확히 모른다. 기업체의 돈을 받아 정치할 이유가 없다. 내 돈 쓰면서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반값아파트’ ‘중학교·국민학교 전면 무료급식’ 등의 인기 공약이 많았다. 하지만 양김(김영삼·김대중)의 지역 패권에 무너진 정 전 회장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김영삼·김대중 후보에 대해 개인적으로 공격한 데 대해 충심으
로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5년 뒤 대선에선 후보들의 합종연횡이 뜨거웠다. 당시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총재는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함께 DJP연합을 만들었다.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가 이에 맞섰다. 신한국당 경선 후 탈당해 국민신당을 창당한 이인제 의원은 15대 대선의 제3후보다. 1.6%포인트 차로 승부가 갈린 97년 대선에서 이인제 후보는 19.2%를 얻어 승패의 물줄기를 바꾼 대표 사례가 됐다. 이후 제3후보는 킹 메이커란 얘기가 나왔다.

2002년엔 월드컵 열기와 함께 월드컵 조직위원회 위원장이던 정몽준 의원이 대선의 주요 변수였다. 월드컵 이후 정 의원의 지지율은 당시 국민경선을 통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훨씬 웃돌았다. 하지만 월드컵이 끝나고 정 의원의 지지율이 주춤해지자 그는 대선을 앞두고 ‘국민통합21’이란 정당을 만든 뒤 노무현 후보와 후보 단일화 협상을 벌인다.

정 의원 측 협상단 대표로 참여한 김민석 전 민주당 최고위원은 “자신이 대변하던 후보를 안심시키면서 상대방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팽팽한 진공상태를 만들어야 했던 사상 초유의 단일화 협상”이라고 기억했다.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단일화로 인해 한때 30%를 넘었던 정 후보 지지 성향의 제3지대 표 상당수가 노 후보 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분석됐다.

17대 대선을 2년여 앞둔 2005년 6월엔 고건 전 국무총리가 각광받는 제3후보였다. 고 전 총리는 상당 기간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당시 보여준 안정된 국정운영능력이 높은 지지율의 원인이었다. 고 전 총리는 2006년 8월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해 5개월간 서울·부산 등 8개 지역에 미래와 경제포럼을 만들었다. 지지자들 사이에선 고 전 총리를 국민의 이름으로 추대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이런 움직임이 정동영 지지자들과의 갈등을 불렀고, 2007년 초 고 전 총리는 정치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당시 그는 “새로운 대안 정치세력의 통합에 한계를 느꼈다”고 밝혔다.

당시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도 17대 대선의 제3후보였다. 유한킴벌리 사장 출신의 문 대표는 ‘참신한 경제인’ 이미지로 인기를 끌며 대선에 출마했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가 후보 단일화를 거듭 요구했지만 문 대표는 독자 출마를 고집했다. 문 대표는 대선에서 5.8%의 득표율에 머물렀다. 이회창 후보는 15.1%를 얻었다.

제3후보들은 대체로 수도권에서 자신의 전국 평균 득표율보다 높은 지지를 보였다. 제3후보를 지탱하는 지지층이 주로 기성 정치권에 실망한 전통적 무당파인데 지역적으론 수도권과 충청권 등 정치적 중립지대 유권자가 우호 세력이기 때문이다.

과거 대선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하면 제3후보 지지자가 한때 30%를 넘었다가 선거일이 임박하면 급속하게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 교수는 “대선이 임박한 11월에는 여야가 거대 조직을 동원해 선거구도를 몰고 간다. 그래서 제3후보에겐 ‘11월의 저주’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표 이탈을 막으려면 제3후보 스스로 선거를 주도할 수 있는 쟁점을 끊임없이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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