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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먹고 산 지 50년 한바탕 광대놀이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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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소설가 황석영이 데뷔 50년을 맞았다. 신작 소설 ?여울물 소리?는 신문과 인터넷에 동시 연재했던 것이다. 그는 “낚시꾼이 고기를 잡으려면 고기가 모이는 데서 기다려야 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다 인터넷에서 노는 데 그리로 가야 한다. 작가들도 미디어의 변화에 따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문단의 소문난 ‘구라(입담)’가 벌써 50년째다. 소설가 황석영(69)이 등단 50년을 맞아 장편 『여울물 소리』(자음과모음)를 내놓았다. 자칭 ‘소설로 쓰는 작가론’ 문구처럼 그의 문학인생 50년을 돌아보는 자전적 성격이 강하다.

 배경은 19세기 조선이다. 주인공은 당시 이야기꾼인 전기수(傳奇<53DF>) 이신통이다. 양반가 서얼이라는 신분 때문에 벼슬길에 나서는 건 언감생심이던 이신통은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책을 읽어주는 전기수가 된다.

이후 강담사와 재담꾼, 광대물주와 연희 대본가 등을 거쳐 천지도에 입문해 혁명에 참가한 뒤 비명에 스러진다. 가려진 듯하던 이신통의 궤적은 그와 운명적인 연을 맺은 여인 연옥의 눈을 거쳐 하나씩 드러난다.

 17일 만난 황씨는 “이신통은 가정을 파한 ‘나쁜 남자’다. 이신통에게 정착해야 할 고향이자 가정인 연옥이 그의 뒤를 쫓으며 퍼즐을 맞추듯 모자이크를 그리며 듣는 이야기다.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이신통의 여러 면모를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작가 스스로 “주인공은 현재를 사는 황석영의 아바타와 같다”고 했듯 이신통에겐 황석영의 모습이 배어있다. 예로 이신통이 약방에서 『장끼전』등을 신나게 읽어 내려가는 장면에선 더더욱 그랬다.

 “이신통이랑 (나랑) 닮았지. 내가 광대 기질이 있어요. 떠돌아다니는 것도 그렇고 50세 전까지 가사를 들어 엎고 투옥당하고 쫓겨 다니고. 다 겪은 이야기잖아. 이야기꾼은 나름의 운명이 있는데 다른 사람의 사랑이나 관심을 많이 받다 보니 포기하거나 감당해야 하는 게 있죠. 그런 게 이야기꾼의 운명이에요.”

 고달픈 운명을 지고 가야 하는 작가는 시대에 무심할 수 없다. 중생들과 어울려 살아야 했고, 그들의 아픔에 예민할 수밖에 없던 이신통처럼 말이다.

 “작가는 안테나를 쳐들고 동시대 사람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를 포착해야 해요. 그래서 이제 단편을 좀 써보려고. 당대의 이야기를 하는 데는 중단편이 좋아요. 낚시질이나 연날리기를 할 때 줄을 확 잡아채잖아. 단편은 그렇게 인생의 단면을 잡아채는 맛이 있어요.”

 그가 잡아채고픈 오늘의 이야기는 중산층의 쓸쓸한 몰락이다. “떨어진 사람은 물론이고 중산층에 머물고 있는 사람의 삶도 온전치 않아요.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세계 1위의 자살률. 태어나지 말라 하고,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세상, 그런 시대의 상처를 위로하는 작품을 쓰고 싶어요.”

 제목 ‘여울물 소리’도 그가 세상에 건네는 위로다.

 “어느 날 산사에서 자는 데 보통 때는 안 들리던 물소리가 속삭이듯 들렸어요. 울고 흐느끼다가도 외치고 깔깔대고 자지러졌다가 또 나직하게 들렸어. 그 소리가 꼭 어렵고 힘들어도 무심하게 물 흐르듯 살아가라고 하는 것 같았어요. 이야기는 삶인데, 이야기가 가진 무심함처럼 물이 흘러가듯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황석영=1943년 만주 장춘 출생. 62년 ‘사상계’로 등단. 한국의 오늘을 파고드는 리얼리즘 소설을 써왔다. 대표작 『장길산』 『무기의 그늘』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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