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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화’는 한국 특유의 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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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상언
런던 특파원

한국에선 ‘단일화-’ 하면 뜻이 다 통한다. 길어야 ‘대선 후보 단일화’, 세 단어면 된다.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한 1987년 이후 5년마다 성사가 되든 안 되든 선거판을 좌우했으니 익숙할 대로 익숙하다.

 그런데 외신이 한국 소식을 전하며 이를 소개하는 데에는 좀 애로가 있어 보인다. “야권의 후보를 한 명으로 만드는 작업”이란 표현 뒤에 구구한 설명이 따른다. 영어나 프랑스어에 딱 맞아떨어지는 용어가 없어서다. 그만큼 외국에선 단일화라는 게 보편적이지 않은 일이다.

 해외에서, 특히 서구에서 정치적 연대는 흔하다. 영국 정부는 보수당과 자민당의 연합으로 유지되고 있다. 독일에선 기민·기사·자민 3당이 연대해 연방정부를 이끈다. 프랑스도 사회당이 집권당이지만 녹색당과 급진당 몫의 각료 자리가 있다. 이처럼 정파 간 이합집산은 빈번한데도 ‘단일화’에 생소해 하는 것은 총리나 대통령 후보를 놓고 협상을 벌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는 선거제도와 정치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일이다.

 유럽의 주류인 내각책임제에선 총선 전후에 집권을 위한 연대가 이뤄진다. 통상 선거 뒤 의석 수에 따라 권력이 배분된다. 소수파의 연대를 이끌어내기 위해 다수파가 달콤한 제안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총리직까지 내걸지는 않는다.

 대선을 치르는 프랑스에서도 한국과 같은 단일화는 없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을 때 치르는 결선투표가 있어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1차 투표가 좌우 진영 후보의 단일화 기능을 한다. 1, 2등 후보만 남게 되면 나머지 후보들은 둘 중 한쪽의 지지를 선언하거나 중립을 택한다. 지난 5월 선거에서 극우파 ‘국민전선’의 후보는 끝내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대통령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우파 단일화의 결렬이었던 셈이다.

 선거제도보다 더 근원적인 차이는 정치적 제휴는 정당을 중심으로 펼쳐진다는 데에 있다. 연대의 기본은 정책의 공조다. 따라서 당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정책을 가지지 못한 대중적 인기인과 특정 정파가 선거용 연대를 도모하는 것, 최소한 서유럽에선 지지를 얻기 어려운 일이다.

 네덜란드에 안철수 후보와 비슷한 디데릭 삼솜(41)이라는 인물이 있다. 공학도 출신의 환경운동가로서 공익 목적의 회사를 운영하다 정치에 뜻을 세웠다. TV 출연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은 점도 안 후보와 흡사하다. 다른 점은 그는 8년 전 정당(노동당)에 투신해 내부 검증과 경쟁을 거쳐 당 대표가 됐다는 점이다.

 정당정치의 뿌리가 약하고 투표 한 번으로 집권자가 결정되는 한국에선 앞으로도 ‘단일화’는 계속 시도될 것이다. 고유한 특성으로 자리잡을지도 모르겠다. 역전을 꿈꾸는 2, 3등은 늘 있게 마련이니까. 그러나 정책 대결은 사라지고 ‘편짜기’만 남는 선거가 과연 바람직한지는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