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여겨봐야 할 ‘자기주도형 고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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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7호 30면

2020년에는 대부분의 금융거래와 금융상품의 구매를 온라인이나 모바일뱅킹 환경에서 수행하는 ‘자기주도형(Self-directed)’ 고객이 은행 전체 고객의 80%를 차지한다. 최근 맥킨지가 유럽 10개국에서 1만7000여 명의 은행 고객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분석한 결과다. 이 분석은 유럽의 소매금융 고객을 자기주도형 고객과 함께 멀티채널 이용고객(multichannel users), 영업점 애용고객(branch lovers), ATM·카드 사용고객(ATM·card users)이라는 4개의 세그먼트로 분류했다. 이 분석에 따르면 현재 유럽 고객의 41%가 자기주도형이고 영업점 애용고객은 47%를 차지하나 2020년에는 자기주도형이 80%에 육박할 것으로 예측한다. 이미 북유럽은 자기주도형 고객이 73%다. 이들 자기주도형 고객은 상담과 복잡한 금융상품 이외에는 온라인이나 모바일 채널을 활용하고 예금 가입은 5분 이내, 은행의 기존 고객이라면 대출도 15분 이내에 승인되고 대출금이 통장으로 곧바로 입금되는 것을 기대하는 참을성 없는 사람들이다. 또한 금융상품에 대한 상담도 영업점 직원과 웹 채팅, 소셜미디어, 화상통화 기능 등을 통해 받고자 하며 50% 이상은 자신들에게 맞는 맞춤형 온라인뱅킹 경험을 원하는 고객들이다.

이러한 조사 결과가 먼 나라의 이야기도, 터무니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시대 흐름에 따라 우리의 삶 그리고 고객의 기대 수준은 변화한다. 십수 년 전에 사랑하는 사람과 사진을 찍으면 필름을 들고 사진관에 가서 인화를 하고 또 며칠 동안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진을 찍고 지우고 마음에 들 때까지 다시 찍어 그 자리에서 확인하고 공유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바로 전송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그것도 빠르면 1 분도 채 걸리지 않고서 말이다. 이러한 디지털 환경 속에 자란 세대는 분명 다르다. 지금의 기성세대는 컴퓨터를 배우고 디지털 시대에 ‘익숙해진’ 세대라면 미래의 고객인 젊은 층은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기기를 접하고 인터넷과 함께 자란 디지털 세대다. 가끔 초등학생이나 아기들까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가르치지 않아도 능숙하게 다루는 것을 보면 이들이 자라 지금의 40~50대 고객층과 얼마나 다를지 상상해 본다. 달라도 너무 다를 것이다. 디지털 세대는 사진을 찍고 공유하는 데까지 몇 분 만에 모든 것이 끝나야 한다. 원하는 상품도 마우스 클릭 하나로 구매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유독 금융거래에 있어서만 원하는 속도와 편의성 기준에서 관대해질 이유가 없다. 싫으면 그들은 바로 떠날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은행들은 근본적인 패러다임 시프트를 하고 디지털 혁신(Digital Transformation)이 필요하다.

디지털 혁신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디지털 채널이 중요하다고 아직 많은 고객이 활용하는 영업점들을 하루아침에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디지털을 통해 지금 당장 가시적인 상당한 매출 혹은 비용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많은 노력과 투자를 요하는 혁신을 대대적으로 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과거에 집착하고 시대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 기업이 지불해야 할 수업료는 때론 아주 비싸거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한때 젊은이들의 정보기술(IT) 상품으로 각광받던 소니사의 워크맨이 이제 아득한 과거의 유물이 돼 버린 게 좋은 예다. 소니와 아울러 일본 가전업계 빅3라 불리는 파나소닉·샤프사는 지금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데 과거의 성공에 집착한 나머지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고 적절한 타이밍을 놓친 사례라 할 수 있다.

은행과 고객 간의 접점이 다양화됨에 따라 접점별로 고객이 원하는 바를 제공하지 못하는 은행은 소비자의 마음에서 떠날 수밖에 없다. 과거에 거래 은행의 직원과 빈번한 만남을 통해 정도 쌓이고 신뢰도 쌓인 시대를 대신해 이제는 마우스 클릭 하나로 나에게 얼마나 유익한 정보가 신속하고 편하게 제공되느냐에 따라 주거래은행으로 선정하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대신 정말 필요로 해서 지점을 방문하면 그 어느 은행보다 차별화되고 심층적인 상담이 이뤄져야 고객의 뇌리에 깊이 박힌다.

한마디로 디지털 패러다임 변화에서 본사·영업점·콜센터 등 은행의 모든 부서와 전반적인 프로세스를 변화해야 할 시점이다. 디지털 과도기에 혁신은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것에 불과하다.



김용아 입사 16년 만에 한국 여성 최초로 맥킨지 최고 직급인 시니어파트너에 선임됐다. 하버드대 MBA. 전 세계에서 맥킨지 디렉터는 460명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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