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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의약분업을 왜 했던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부가 건강보험재정의 파탄을 막기 위해 지난 5월 마련한 재정안정 종합대책이 시행 초기부터 차질을 빚고 있다.

특히 건보재정 안정화 특별법을 제정, 8월부터 담배 한갑당 1백50원의 건강부담금을 물려 올 하반기 3천3백억원을 조달할 계획이었으나 반대 여론 등으로 법안의 연내 처리마저 불투명한 상태다.

이에 따라 올 한해 금융권 차입금은 당초 예상보다 3천여억원 늘어난 1조5천억원에 이를 전망이라고 한다.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건보재정 안정화 종합대책은 한마디로 3조2천7백89억원으로 추정되는 올해 재정 순적자를, 수입을 늘리고 지출을 줄여 1조1천2백52억원으로 맞추며 2003년까지 당기 수지균형을 이루고 2006년까지 건전 재정기조를 회복한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수입을 늘리고 지출을 줄이기 위한 스무 가지 단기 대책을 통해 연간 2조5천억원의 재정 개선을 이룰 수 있다고 호언했다.

그러나 지난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환자수에 따른 진찰료.조제료 차등수가제는 의료계와 약계의 반발에 부닥쳐 있다.

또 기준가격을 초과하는 비싼 약을 먹을 때 약값의 일부를 환자가 부담하는 참조가격제도 8월부터 시행할 계획이었지만 시민단체.의료계.약계의 반대로 시행 자체가 불확실해 올해에만 4백15억원의 차질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직장건보 가입자의 피부양자 가운데 사업소득 또는 임대소득이 있는 사람을 40만명으로 추정, 이들에게도 보험료를 부과키로 했으나 현재 징수 대상자는 33만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심지어 33억원이 들어간 진료내역 본인 통보제도의 경우 진료비 삭감효과가 23억원에 그쳤다고 하니 딱한 노릇이다.

이처럼 건보재정 안정화 대책들의 바퀴가 헛돌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정부가 실현 가능성을 따지지 않은 채 여러 대책을 백화점식으로 쏟아낸 데 있다.

차등수가제.참조가격제 같은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대책을 포함시켰는가 하면 손쉬운 담배부담금에 많은 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의약분업을 도입한 목적은 의약물 오.남용과 약화(藥禍)를 막자는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 여러 분석결과는 주사제 남용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동네의원의 외래환자 주사제 처방률이 의약분업 시행 전보다 다소 낮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50%를 넘고 있다.

대학병원의 경우 올 2월 주사제 처방률이 21%로 분업 시행 전(12.3%)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항생제 사용도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

의약분업 본래의 취지는 사라진 채 정부가 구멍난 재정 메우기에만 급급하고 있는 꼴이다. 땜질식 처방으로 적당히 시간을 끌다가 다음 정부로 넘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우선 현재 28% 수준에 불과한 지역건보 가입자의 소득파악률을 끌어올릴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생활보호대상자로 선정된 사람 가운데 5천만원 이상의 금융자산 보유자가 1천5백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져 당국의 소득파악이 얼마나 허술한지 짐작케 한다.

정부는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로 사보험제 도입 등 모든 가능한 대책을 종합검토해 근원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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