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나] 한젬마 미술전문 MC·화가

중앙일보

입력

내가 해외 여행 때 반드시 들르는 곳은 미술관과 서점이다. 서점은 미술관 못지 않게 보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하는 또 다른 전시장이다. 거기에서 고른 책들이 결국엔 여행경비를 축내고 짐의 부피를 더하지만 나는 망설이는 일이 없다.

밝히거니와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시각적 이미지다. 표지뿐 아니라 전반적인 편집 디자인은 책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됐다. 따라서 디자인이란 요소는 영상에 익숙해진 독자들의 미감을 고려한 책 쪽의 성의의 징표로 나는 이해한다.

어쨌거나 시각 이미지와 글 사이의 만남은 퓨전 현상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감동적인 내용에 시각적 이미지가 결합돼 더욱 돋보인 『산에는 꽃이 피네』(동쪽나라) 와 『모닥불』(현대문학북스) 을 예로 들고 싶다.

『산에는 꽃이 피네』의 곳곳에 자리잡은 흑백사진들. 법정스님의 명상적인 글과 조화를 이룬 산사의 풍경사진을 보노라면 어느새 마음의 여행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충만해진 마음을 덮으면 새삼 만나게 되는 판화가 이철수의 표지 작품 붉은 꽃 한 송이의 목판화와의 재회는 꽃 한 송이를 둘러싼 흰 여백에 젖어들게 한다. 이철수씨 자신이 산문과 판화가 맛깔스럽게 어울린 『소리 하나』(문학동네) 를 펴내기도 했다.

『모닥불』은 정호승 시인과 박항률 화가의 합동작이다. 단순한 부속물이 아니라 글에 버금가는 자체의 무게를 지니고 마침내 글의 힘을 배가시키는 미술과 문학의 만남, 퓨전의 긍정적 역할을 보여주는 사례다.

변화하는 시대는 책의 형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여행지에서 만난 아름다운 책들은 제목과 내용 이상의 것을 보게 한다. 눈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즐겁게 하는 예술 같은 책들. 내가 여행지에서 주저하지 않고 선택해 소장했듯 외국인들이 갖고 싶어 할 만큼의 언어를 초월한 감성을 자극하는 책의 등장을 기대해 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