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장수시대] 질병보다 더 무서운 질병후유장애 ③ "치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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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는 슬픈 병이다. 살아온 인생을 잊기 때문이다. 낳고 길러준 부모에 대한 기억은 물론, 성장을 함께한 친구와의 즐거운 추억을 모두 지워버린다. 평생을 함께하려던 배우자와 살뜰히 키워온 자녀들에 대한 사랑마저 날려버린다. 다시 만들 수 없는 그 모든 아름다운 기억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는 고약한 병이다.

치매는 기억력 감퇴를 넘어 뇌 능력이 크게 저하되면서 발생한다. 나이에 따라 몸이 퇴행하는 것처럼 뇌도 나이를 들어 치매가 일어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뇌경색이나 뇌출혈, 비타민 B12결핍, 저산소증, 갑상선 기능 저하, 간성뇌병증, 요독증, 윌슨병 등에 의해서도 치매가 일어난다. 술을 많이 마셔서 얻게 되는 알코올중독이나 약물중독 등도 치매의 원인이다.

종류도 다양하다. 알츠하이머형 치매에서 부터 혈관성 치매, 루이체 치매, 외상으로 인한 치매 등으로 나뉜다. 한국은 알츠하이머형 치매가 전체 치매 환자의 66.4%를 차지한다. 혈관성 치매와 기타 치매의 비율은 각각 17.5%, 16.2% 수준이다.

세계적으로 고령화 사회가 진행되면서 치매 환자 수가 늘고 있다. 세계적으로 매년 460만명, 7초당 1명씩 치매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발생빈도가 증가하는데 특히 65세 이상에서 큰 폭으로 증가한다.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치매 노인 유병률 통계를 보면 2002년과 비교해 2009년 치매 진료 환자 수는 4.5배나 증가했다.

치매 노인의 증가추이 및 전망

특히 한국은 급격히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치매 환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매 20년마다 한국의 치매 환자 수가 2배씩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65세 이상 노인의 9.1%인 52만 2천명이 치매 환자인데 2030년에는 113만명 수준, 2050년에는 212만명까지 늘어난다는 것이다.

치매와 관련해 충격적인 것은 발병 연령이 젊어진다는 것이다. 과거 노인들만 걸리는 것으로 여겨지던 노인성 질환 전체 환자 5명 중의 1명이 불과 40~50대 중년이다. 특히 치매는 중년 여성에게서 더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학계도 그 원인을 뚜렷하게 밝히지 못했지만 여성의 수명이 더 길어서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거나 치매의 위험요소가 되는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가 중년 여성에서 발생할 빈도가 높기 때문인 것으로 추론하고 있다.

한참 경제생활을 영위해야할 나이에 치매에 걸리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우선 기억력이 감퇴돼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를 잊거나 가까운 사람들의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돈 계산이 서툴러져 경제적인 일을 하기 어렵게 된다. 우울해지면서 '누가 돈을 훔쳐갔다' '배우자가 바람을 피운다'는 식으로 가족을 의심해 가정생활도 힘들어진다. 치매말기에 이르면 타인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종국에는 가족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이름마저 잊어버린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가족들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강동진 삼성화재 사의는 "90% 이상의 치매환자가 일상생활에서 보호자의 도움이 필요하며 경미한 정도의 치매 환자의 30%도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생활할 수 있다"면서 "노인질환 중 장애기간이 가장 길어 보호자들의 노력과 경제적 부담이 증가하는 병"이라고 말했다.
치매에는 인지기능 항진제 등의 약이 있지만 증상을 경감시키고 진행을 지연시켜줄 뿐 완치를 할 수는 없다. 약물치료와 함께 꾸준히 인지재활 훈련 등으로 환후를 줄이는 길 뿐이다.

2009년 조사에 따르면 치매 환자 1인당 연간 총 진료비는 288만원이다. 2002년과 비교하면 2.5배 늘어난 수치로 치매 치료비는 점차 부담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치료비 뿐 아니다. 치매가 중기를 넘어서면 더 이상 경제생활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족의 생활비를 벌 수 없다. 또 치매에 걸린 본인은 장기간 요양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자신은 알지도 못한 채 한정 없는 요양비를 쓰게 된다.

치매로 인한 장애 또는 장기요양비용의 우려를 덜기 위한 상품도 있다. 삼성화재의 '무배당 삼성화재 통합보험 수퍼플러스'는 뇌병변장애 등 장애인복지법에서 정한 12대 장애 에 해당되어 장애인으로 판정될 경우, 2급 이상 장애 판정 시 질병고도케어 생활자금을, 3급 이상 장애 판정 시에는 질병중증케어 생활자금을 보장한다. 또한 노인장기요양법에 따라 요양등급 1,2급을 받고 소정의 판정기준을 충족하면 장기요양지원금을 보장받을 수 있다. 자신 스스로를 잊기 전에 가족을 위해 그 대책쯤은 미리 준비해둬야 한다. 치매는 노후와 함께 누구에게나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 박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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