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파워리더 ⑪ 박민관 우양HC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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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평택 포승공단의 공장 마당에 선 박민관 우양HC 대표. 뒤에 보이는 것은 높이 105m, 지름 8m 화학공장 설비로 싱가포르에 수출될 예정이다. [평택=박종근 기자]

경기도 평택항 근처 포승공단 내에 자리잡은 우양HC. 1993년 경기도 안산에서 270㎡(약 80평) 남짓한 가건물에서 3명의 직원을 데리고 시작한 이 회사는 19년 만에 국내 석유화학 설비업체의 대표주자가 됐다. 매출 2200억원, 직원 300여 명에 5만㎡(약 1만5000평) 공장을 갖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수출이 계속 늘었다. 글로벌 석유회사 셸·셰브론 ,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업체인 아람코도 고객이다.

 이 회사 박민관(49) 대표는 “남들이 볼 땐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큰 사업과 업체에 도전장을 낸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경기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제약회사에서 근무하다 선배의 권유로 함께 회사를 시작했다. 기술 쪽은 문외한이어서 주로 인사나 총무를 맡았던 그는 선배가 갑작스레 사망하면서 회사를 혼자 이끌게 됐다.

 중견기업으로 도약할 계기는 2004년에 찾아왔다. 높이 103m짜리 원유 정제 관련 설비를 LG석유화학(현 LG화학)에 납품한 일이었다. 넘치는 주문을 소화하려고 설비를 발주한 LG는 하루라도 빨리 납품을 받고 싶어했다. 한 대기업이 24개월 완성을 제시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큰 사업엔 입찰 자격조차 없을 정도로 소규모였던 우양이 여기에 뛰어들었다. 박 대표는 수십 차례 담당자를 찾아가 “입찰이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졸라 기회를 얻은 뒤 “15개월 만에 완성하겠다”는 견적을 넣었다. “약속을 못 지키면 한 푼도 안 받는다”는 조건도 달았다.

 밤을 새워가며 일한 결과 약속한 15개월에서 2주 앞당겨 납품에 성공했다. 이익은 못 냈지만 우양은 업계에서 존재감을 얻었다. 이후 세계 각지로부터 주문이 쏟아졌다.

 기술 명장을 데려오는 일이라면 돈을 아끼지 않던 박 대표는 2007년 세계 3대 용접 명장으로 꼽히는 일본인 가와하라를 기술고문으로 데려왔다. 2009년엔 이스라엘 수출 길을 열었다. 난데없이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바이어를 만나다 말고 방공호로 대피하기를 두 차례. “나중에 알고 보니 500m 떨어진 곳이 공습을 당했더라”고 했다. 이스라엘 업체는 700만 달러짜리 계약을 줬다. 이때부터 일본 업체만 주로 상대하던 이스라엘과 유럽, 중동 업체들과 거래를 트게 됐다.

 박 대표는 “회사가 성장한 가장 큰 공은 직원에게 있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그래서 2007년부터 매년 한 차례 전 직원 여행을 하고 있다. 동남아 각지와 제주도 등지를 다녀왔다. 1인당 150만원쯤 드는 비용은 회사가 절반, 박 대표가 절반을 낸다. 부장이 되면 골프를 배울 수 있게 클럽 구입비와 수강료로 주는 300만원도 박 대표 주머니에서 나온다.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19년간 그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한 은행의 대출 임원이 바뀐 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230억원의 여신을 한꺼번에 회수하려 한 것이다. 간신히 월 단위로 만기를 늦춰가며 1년 만에 갚았다.

 코스닥 등록 이후엔 회사를 키우기 위해 투자를 늘릴 때마다 대기업과는 달리 자금 사정을 걱정하는 투자자들 때문에 주가가 악영향을 받는 것이 걱정이다. 박 대표는 “중견기업에 투자하라고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투자를 많이 할 수 있도록 정부가 혜택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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