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세상] 정치사회 변혁 이끈 뉴미디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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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인류 역사상 굵직한 정치사회 변혁에는 뉴미디어가 함께한 경우가 많다. 유럽 중세의 봉건주의를 무너뜨리는 출발점이 된 종교혁명과 농민혁명 때는 팸플릿이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위한 투쟁정신을 고취하는 데 큰 몫을 했다.

근대 민주주의의 사상 체계를 뿌리내리게 한 프랑스 대혁명 과정에서는 수많은 정치 클럽이 자유.정의.박애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사상과 자기들의 정치이념을 전파하기 위해 각기 저널들을 발간했다.

이 저널들은 혁명의 불을 지피고 그 열기를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을 이끈 레닌은 신문을 '선동.선전.조직자'로서 혁명의 프로파간다를 담당하도록 요구하며 이를 철저히 활용했다.

세계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중계였는데, 이는 결국 독일에서 나치즘을 옹호하고 전쟁을 미화하는 도구로 오용됐다.

또 이란의 호메이니옹은 프랑스 망명 중 자신의 육성 메시지가 담긴 카세트 테이프를 활용, 이슬람 혁명을 이끌었다. 이처럼 미디어는 역사적인 변혁의 과정에서 독으로도, 약으로도 활용됐다.

20세기 후반 소련과 동유럽 등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한 이후 보편적인 세계 정치체제로 자리잡은 민주국가에서도 미디어의 역할은 중요하다.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국민의 복지, 시장경제를 확보하기 위해선 권력분립과 상호 견제.감시 등 제도만으로는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권력을 감시하고 시민들의 정치참여을 고무시키는 여론 형성을 위해 미디어의 역할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21세기 벽두에 한국은 뉴미디어를 통한 사회정치적 변화를 맞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가입자를 보유한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 인프라를 토대로, 네티즌들에 의해 정치 권력의 중심이 이동 중이다.

개인주의적이고 정치적으로 무기력한 세대라고 규정됐던 2030세대는 뉴미디어를 통해 새로운 정치 지형을 만들고 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결합돼 형성된 집단을 세계적인 뉴미디어 학자 하워드 라인골드는 '영리한 군중(smart mobs)'으로 표현했다. 한국 사회에서 '노사모''붉은 악마''촛불시위대' 등이 대표적인 예다.

많은 학자가 경고하듯이 이들이 정치적인 세력에 이용당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역할과 비전을 만들어가는 사회동력이 될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뉴미디어에 의한 한국 사회 변화가 지역적인 특수현상으로만 끝날 것인가, 사회 변혁과 매스미디어 발전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인가는 지금부터에 달려 있다.

대변혁의 과정에서 정치가 독선에 빠지고, 미디어가 도구적인 기능만 담당할 경우 그 대가가 얼마나 큰지를 이전의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다.

7백여년 전 고려가 세계 최초라는 독일의 구텐베르크보다 1백년 빨리 금속활자를 발명했음에도 국가의 전유물이 돼 사회변화의 원동력이 되지 못한 채 사장됐던 역사적 경험을 눈여겨 볼 때다.

김택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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