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2000만원 전세 세입자에게 3억 빚내 집 사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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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봉 기자] 지난달 31일 경기도 남양주 A아파트 회의실에 10여 명이 어두운 얼굴로 모여들었다.

지난해 부동산업체 T사 소유의 아파트(전용면적 116.54㎡)에 1억2000만~2억원을 주고 전세를 들어온 세입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달 초 T사로부터 “국세를 체납해 아파트가 압류될 처지”라는 얘기를 들었다.

T사 관계자는 이날 법무사와 대출모집업체 직원을 대동하고 “공매가 진행되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니 차라리 아파트를 사라. 3억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므로 일주일 안에 계약해 달라”고 말했다. 한 세입자는 “전세금을 빼더라도 3억5000만원은 있어야 하는데 그 돈이 있으면 왜 전세를 들어왔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부동산 경기 악화로 이른바 '깡통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간 세입자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깡통아파트'란 가격 하락으로 집을 팔아도 대출금과 전세금을 갚지 못하는 아파트를 뜻한다.

T사는 지난해 3월 A아파트 미분양 가구 26채를 사들였다. 매입가는 당초 분양가인 6억1000만~6억3000만원보다 훨씬 낮은 4억3000만~4억4000만원이었다. 지난해 1월 시행사 부도로 나온 미분양 가구를 '통매입'한 것이다.

집 팔아도 대출·전세금 못 갚아

T사는 이 중 팔지 못한 11채는 전세를 놨다. T사는 제2금융권에서 분양가를 기준으로 받은 대출(한 채당 평균 3억4000만원)과 전세금(1억2000만~2억원)으로 매입 비용을 충당했다. 세입자들은 금융기관에 저당이 잡혀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분양가를 볼 때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국토해양부가 올 1월 조사한 이 아파트의 공시가격은 4억1600만원. 2007년 분양가의 60% 수준으로 떨어졌다. 경매가 진행될 경우 3억원대에 낙찰될 것으로 예상돼 세입자들은 전세금을 날리게 된다. 전세보증금이 앞서 설정된 금융기관 근저당에 비해 후순위이기 때문이다.

미분양아파트의 경우 거래가 거의 없어 시세를 알기 힘들다는 맹점이 세입자의 발목을 잡고 있다. 거래 내역이 없는 경우 금융기관은 분양가를 근거로 감정가를 산정해 대출액을 결정한다.

또 T사는 지자체에 매매 신고를 할 때 실제 매입액이 아닌 분양가로 했다. 세입자로서는 등기부등본을 확인하더라도 집값이 분양가 수준이라고 착각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대해 T사 관계자는 “시세 차액을 노리고 아파트를 샀지만 이자 비용 등으로 지난해 10억원 적자를 봤다”며 “세입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세금까지 체납하는 형편이라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 용인의 B아파트와 김포 한강신도시의 C아파트도 부동산업자 소유의 일부 아파트가 경매에 들어가면서 세입자들이 전세금을 고스란히 날릴 위기에 놓였다. 현재 전국의 미분양아파트는 7만여 채, '깡통아파트'는 34만 채로 추산된다.

아파트 값이 계속 떨어지면 미분양아파트를 '통매입'한 업자들이 처분에 나서게 돼 세입자들의 피해가 확산될 조짐이다. 명지대 권대중(부동산대학원) 교수는 “미분양 가구를 매입한 부동산업체 소유의 아파트를 전세 계약하는 것은 위험성이 크다”며 “계약 전에 지자체 지적과에서 거래신고가를 확인하는 등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깡통아파트

=집을 팔아도 대출금을 갚고 전세금을 빼주면 남는 게 없거나 오히려 모자라는 아파트를 뜻한다. 집값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과거 주택담보인정비율(LTV) 50~60%로 대출을 받은 금액이 현재 시세의 70~80%까지 뛰어오른 아파트도 잠재적 깡통아파트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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