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학교 입학시키려고 위장 이혼·결혼한 엄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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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서울 강남에 사는 중견기업가의 며느리 오모(46)씨는 지난해 남편과 위장 이혼을 했다. 자녀를 외국인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접촉한 브로커 조모씨가 제안한 방법이었다. 현지에서 에콰도르 국적의 외국인과 위장 결혼을 했으나 국적취득이 순조롭지 않았다. 브로커는 대신 해외동포의 가짜 국내거소신고증을 전해 주었고 오씨는 이를 G외국인학교에 제출, 자녀를 입학시켰다.

 #중견기업가의 며느리 백모(36)씨는 자녀 3명을 모두 미국에서 원정 출산해 미국 시민권자 자격을 얻게 했다. 위로 두 자녀는 탈없이 외국인학교에 보냈으나 셋째는 법이 바뀌어 부모의 외국 국적이 필요하게 됐다. 브로커 김모씨에게 4000만원을 준 뒤 직접 과테말라로 가서 위조여권을 전해 받았다. 하지만 브로커 김씨는 “입학을 원하는 외국인학교가 과테말라 국적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백씨는 하는 수 없이 온두라스 여권까지 위조해 만들어 달라고 브로커에게 부탁했다.

 #서울 강남의 의사 부인 이모(38)씨는 아이를 외국인학교에 보내기 위해 브로커 김모씨에게 도미니카공화국의 여권을 부탁했다. 한 달여 만에 여권 실물이 아닌, 컬러 프린터로 출력한 도미니카공화국 여권 사본을 전해 받아 외국인학교에 제출했다. 아이의 출생지는 도미니카의 지방도시로 기재돼 있었다.

 외국인학교 부정입학 사건을 수사해 온 검찰이 밝힌 사례들이다. 재벌가, 대기업 임원, 법조계, 정계 등 부유층 집안의 학부모들이 다양한 수법을 동원해 자녀를 외국인학교에 부정 입학시켰다고 검찰은 밝혔다. 위조 여권을 차질 없이 발급받기 위해 현지의 담당 공무원에게 뇌물을 준 경우도 있었다. 매수한 공무원이 출근하지 않아 현지 체류기간 내내 기다렸다가 여권을 겨우 받아온 학부모도 있었다. 위조 여권 취득 등 외국인학교 부정입학을 주도한 학부모들은 대부분 어머니였으나 모 기업 대표 등 아버지가 주도한 경우도 2건 적발됐다.

 인천지방검찰청은 6일 3개월여에 걸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학부모 권모(36·여)씨를 사문서위조 등 혐의로 구속, 학부모 46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 중에는 I그룹 회장의 며느리, G그룹 전 회장의 며느리, D그룹 상무의 아내, L그룹가의 며느리 등 재벌가 4명, 대기업 임원 가족 4명, 중견기업인 21명, 의사 7명, 법조인 1명, 전직 의원 1명 등이 포함됐다. 이와 함께 부정입학 알선 브로커 3명과 여권 위조 브로커 1명 등 4명도 함께 구속됐다.

 구속된 권씨는 2009년 불가리아·영국·과테말라 등 3개국의 위조 여권을 발급받아 딸을 2개 외국인학교에 부정 입학·편입학시킨 혐의다. 충남의 유력 기업가 며느리인 권씨는 가짜 여권 발급 대가로 브로커에게 모두 1억200만원을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권씨에겐 수사 과정에서 증거 인멸을 꾀한 혐의가 추가됐다. 불구속 기소된 학부모들도 브로커에게 대개 4000만∼1억원씩을 건네고 여권 등을 위조한 혐의다.

 검찰 관계자는 “브로커들은 학부모들의 재력이나 신분에 따라 차등을 두어 돈을 받았다”고 말했다. 인천지검 김형준 외사부장은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이었다”며 “이런 행태가 자녀들에게 대물림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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