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구 주택 가격파괴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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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신부동 신축 원룸 10평,보 300,월 28(옷장·심야전기·에어컨).’

충남 천안 한 생활정보지의 원룸 임대 코너엔 이러한 내용이 3쪽에 걸쳐 빼곡이 적혀 있다.대부분엔 값을 깎아줄 수 있음을 암시하는 ‘절충 가(可)’ 글귀가 들어 있다.

보증금 5백만∼1천만원,월세 30만∼40만원 수준이던 지난해 상반기보다 훨씬 떨어진 가격이다.아예 보증금을 받지 않고 월세로만 받는 곳도 생겨났다.

이 같은 ‘원룸 값 폭락’은 지난해 봉명·안서동 등지를 중심으로 다가구 주택이 너무 많이 지어졌기 때문이다.

천안시에서 다가구주택의 주차장 설치 기준을 강화하려 하자 너나 없이 ‘일단 짓고 보자’며 서둘러 지었던 것이다.

천안시 경우 지난해 다가구주택 허가건수는 9백25건(1만2천여 가구)으로 2001년(2백74건)의 3.4배나 됐다.가구수로 따지면 2001년 천안시 아파트 건립 규모(1만5천여 가구)에 육박하는 1만2천여 가구에 이른다.

지난 한해 구도심 주택가인 봉명·성정·다가동과 대학 밀집지대인 안서동 등지의 동 전체가 공사판을 방불하더니 연말 연시를 맞아 완공된 원룸이 봇물처럼 쏟아진 것이다.

다른 지방도 사정은 비슷하다.

광주시의 경우 2000년 3백59건이었던 다가구주택 허가 건수가 2001년 9백33건으로 급증한 데 이어 지난해엔 1∼10월에만 1천1백여건을 기록했다.

전북 전주시도 2001년 1백84건(2천33가구)였던 다가구 신축 물량이 지난해에는 6백29가구(7천2백13가구)로 급증했다.이들은 대부분 전북대·전주대 등 대학가 주변에 집중됐다.

이처럼 다가구주택 물량이 쏟아지면서 인터넷·책상·냉장고·TV 등을 갖춰 놓고 입주자를 찾는 이른바 ‘풀 옵션 원룸’까지 등장했다.심야전기를 사용해 유지비가 적게 든다고 선전하는 곳도 있다.

봉명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지난해 여름만 해도 구해 줄 방이 없었는데 이제는 입주자가 마음에 드는 방을 골라 가는 상황”이라며 “지은 지 3∼4년 지난 곳은 거들떠 보지도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H부동산 진모(55)씨는 “천안대 건너편 원룸 촌이 새로 형성되는 등 순식간에 공급물량이 급증했다”며 “내년 봄 신학기가 오더라도 빈방이 남아날 것”이라고 예상했다.그는 “현재 신축 원룸의 경우 60∼70%가 비어 있다”고 덧붙였다.

원룸아파트 임대업자 김모(46)씨는 “지은 지 5년밖에 안됐는데 새로 지은 건물만 찾아 봄철을 앞두고 전반적인 리모델링을 하고 있다”며 “이 일대 기존 원룸들은 최소한 서너 개씩 방이 비어 있다”고 말했다.

S부동산 윤모(40)씨는 “미입주 가구가 늘면서 원룸 임대업자들이 빌린 공사비를 갚지 못해 부도를 내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며 세입자의 세심한 주의를 당부했다.

천안=조한필 기자,전주=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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