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큰 틀에서 보는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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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경제는 한마리 토끼도 잡을 능력이 없는 포수가 두 마리를 놓고 어느 것을 잡을까 고민하는 어리석음의 함정에 빠져 있다.

구조개혁의 변환기라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많은데 주변 여건은 악화돼 정책수단의 제약은 오히려 커진 상황이다.

그런데 정부는 마치 모든 것을 다 할 것처럼 약속만 반복한다. 구조조정과 경기부양이 양자택일인 것처럼 외쳐대는 학자들 역시 믿음이 가지 않긴 마찬가지다.

***구조조정-경기부양 대립

경제학은 합리적인 선택의 학문이다. 경제자원이 한정된 상황에서는 대안 간에 상충관계가 발생하게 마련이다.

정책목표가 부닥치는 것은 정책수단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특정 목표를 위한 정책수단의 선정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는 것은 어떤 수단이 초래하는 편익과 비용을 사전적으로 평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유념해야 할 것은 합리적 선택의 의미가 하나를 살리고 다른 것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마찰을 빚는 정책목표들이라도 장기적인 차원에서는 보완적일 수 있다. 한번에는 힘들지만 종국적으로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정책수단의 선택도 양자택일 식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힘이 부치는 사냥개라면 두 마리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작금의 경제논쟁을 보면 합리적인 선택보다는 일방적인 주장에 가까운 부분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구조조정과 경기부양을 일차원적인 대립상황으로 놓는 것이다.

경기가 나아지면 구조조정의 의지가 퇴색될지 모른다고 경계할 수는 있지만 경제의 시스템을 수리해 불확실성을 줄이는 장기적인 차원의 문제와 경기변동의 폭을 조정하는 단기적인 사안을 무슨 택일해야할 목표인 것처럼 보는 것은 곤란하다.

현 상황에서 진짜 핵심적인 문제는 구조조정이건 경기부양이건 사용되는 정책수단들이 효과가 있는지 여부다. 엄청난 액수의 공적자금을 퍼붓고도 구조조정이 부진하다면 기존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또한 원한다고 해서 과연 우리 마음대로 경기부양이 이루어질지도 의문이다. 편법에다 그나마도 뒷북 치는 식으로 튕겨 나오는 경기대책으로는 부작용만 더 커질 수 있다.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지금은 정책수단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일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정책능력이 커지면 목표 간의 우선순위 조정은 의외로 수월할 수 있다.

우선 구조조정은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신뢰할 만한 청사진만 주어진다면 시장의 불확실성은 빠르게 가실 수 있다.

정보는 숨기고, 책임은 피하고, 정책은 끌려가는 현 상황에서는 큰 기대를 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조급증을 버리고 다음 정권이 들어와도 손을 대기 힘든 수준의 대폭적인 계획수정을 여야가 합의할 시점이다.

공적연금이나 국가채무 문제도 숨기지 말고 터놓고 공론화해 장기대책을 세우는 것이 모두에게 유리한 선택이다.

***기업 투자지원 치중해야

경기대책의 경우 금리.세율.재정지출 등 어느 하나도 단편적으로 쓰는 데는 한계가 있으므로 정책조합의 묘를 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백화점식 나열이 아니라 효과의 상승작용을 꾀해야 하고, 끌려가는 처방이 아니라 선제공격의 시점을 잡아야 한다.

모아진 수단의 힘은 분산하지 말고 투자지원과 직업훈련과 같은 한두 가지 목표에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

이런 정책은 수요진작 외에 공급측면의 경쟁력을 기를 수 있고, 구조조정에 보완적일 수도 있다. 세계경제의 침체를 탓하지만 우리 기업의 경쟁력 하락도 수출 부진의 원인인 것이다.

소득세나 부가세율의 전반적 인하와 같이 효과는 불확실하고 비용은 분명한 소비진작책보다는 기업투자지원에 치중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부채비율제한.출자총액제한과 같이 살려고 바둥대는 기업까지 간섭하는 규제는 철폐하고 그 대가로 경영투명성 관련 제도를 도입하면 경쟁력과 개혁의 동시 추구가 가능할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최선의 정책수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냉정하게 경제의 틀을 되짚어 차선의 조합을 만드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전주성 이화여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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