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육상] 아베라, 준비된 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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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훈련이 금메달의 비결입니다." 세계육상선수권 마라톤 우승자 게자헹 아베라(23.에티오피아)는 마치 긴 터널을빠져나온 듯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아베라는 4일(한국시간) 치열한 막판 스퍼트 끝에 사이먼 비워트(케냐)를 1초차로 제치고 금메달을 딴 것보다 오랜 슬럼프를 딛고 재기했다는 점에 나름대로 우승의 의미를 부여하려는 듯 했다.

지난해 시드니올림픽에서 그는 32년만에 조국에 금메달을 선사하며 일약 `에티오피아의 영웅'으로 떠올랐지만 그 뒤로는 패배의 연속이었다.

올림픽 제패 후 첫 레이스였던 지난해 12월 후쿠오카마라톤에서 5위에 그친 아베라는 컨디션 난조를 이유로 3월 예정된 동아마라톤에 불참한 데 이어 4월 보스턴마라톤에선 2시간17분4초의 초라한 기록을 내며 15위에 머물렀다.

그가 주춤하는 사이 강력한 라이벌 이봉주(삼성전자)는 후쿠오카에서 준우승하며 재기에 성공하더니 보스턴에서는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올림픽 때 얻은 아베라의 애칭은 `제2의 아베베'. 60, 64올림픽을 2연패한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 비킬라와 비슷한 체격(170㎝.58㎏)에 타고난 지구력과 스피드를 겸비한 데서 비롯됐다.

하지만 `올림픽 후유증' 탓인지 그가 잇따라 비틀대자 `깜짝스타'란 달갑지 않은 소리가 들렸다.

주위의 시선이 달라진 것을 뼈저리게 느낀 아베라는 "처음부터 다시 뛰자"며 자세를 가다듬고 다시 신발끈을 바짝 졸라맸다.

해발 2,400m의 아디스아바바 등 고지대에서 훈련캠프를 차려 폐활량을 더욱 키운 뒤 보스턴 참패 이후 일찍 에드먼턴 현지에 들어가 코스를 살펴보는 등 세계선수권 제패를 위해 비지땀을 흘렸다.

지구력과 함께 자신의 최대 강점인 스피드 보강에 주력해 무더위 속에 열릴 결전에 철저히 대비했다.

그의 눈물겨운 노력은 결국 1, 2위간 최소 기록차 승리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스피드가 스프린터 못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 아베라는 기자회견에서 "스피드 훈련을 강화한 것이 주효했다. 스타디움으로 들어갈 때 승리를 확신했다"고 말했다.

올림픽 제패 후 천당과 지옥을 오간 끝에 사상 첫 올림픽과 세계대회 제패라는 족적을 마라톤사에 새긴 아베라가 정신적 성숙을 통해 전성시대를 열어갈 지 주목된다. (에드먼턴=연합뉴스) 이정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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