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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찾기’ 프로그램에 비친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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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최형규
베이징 총국장

중국 장쑤(江蘇)성 위성TV가 매주 토요일 방영하는 ‘페이청우라오’(非誠勿擾)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청춘 남녀 짝 찾기 프로그램인데 ‘진심으로 다가와 달라’ 정도의 의미다.

 2010년 첫 방송 후 2년여 동안 중국 TV프로그램의 ‘지존(至尊)’으로 군림하고 있다. 평균 시청률이 기적에 가까운 4%대를 웃돈다. 중국 관영 중앙(CC)TV의 간판 프로그램인 저녁 종합뉴스 시청률보다 높으니 말 다했다. 참고로 중국에는 케이블만 600여 개에 지상파 등을 합치면 1000여 개의 TV 채널이 있다.

 그렇다면 인기비결은 도대체 뭘까. 한마디로 중국 젊은이들의 응축된 고뇌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터져 나온다. 우선 출연자 구성부터 사회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여성 24명이 남성 한 명을 놓고 경쟁하는데도 남자가 성공할 확률이 20% 정도다. 중국의 결혼 적령기 남녀 성비는 남자가 10% 정도 많다. 이 때문에 남성 24명이 여성 한 명을 놓고 게임을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도 이런 역발상을 한 건 장가 가기 어려운 중국 젊은 남성들에 대한 고발의 의미를 담고 있다. 다양한 출연자의 진솔함과 직설화법에는 젊은이들의 가치관과 사회 모순이 그대로 투영된다.

 남녀 출연자 중 20% 정도는 결손가정 출신인데 이를 숨기지 않는다. 그러면서 펑펑 운다. 묘하게도 이렇게 아픔을 고백한 남녀가 짝에 성공한 경우가 많다. 동병상련으로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겠다는 무언의 절규다.

 이른바 스펙 좋은 킹카들은 대부분 아웃이다. 최근에는 베이징(北京)대를 나온 회사 사장, 소위 말하는 상위 0.1%가 출연했다. 첫 5분간은 모든 여성의 관심이 폭발했다. 그러나 자신의 부모에게 밤낮으로 문안인사를 할 수 있는 여성을 찾는다는 조건에 모든 여성이 ‘노’했다. 돈도 권력도 개인의 자유에 우선하지 않는다는 그들의 가치관이 드러난 거다.

 이달 초에는 쓰촨(四川)성 부향장(부면장급)이 출연했다. 키도 크고 얼굴도 준수한 30대 청년이었다. 중국에서 공무원은 곧 권력. 누가 봐도 탐이 나는 신랑감이었다. 한데 이 친구, 무대에 오르면서 팔자걸음을 걸었다. 여성들이 이유를 묻자 그는 “현지 지도를 많이 다녀서 나도 모르게…”했다. 결국 그는 홀로 무대를 떠났다. 일주일 뒤 중국 언론에 보도된 그의 어머니의 푸념과 하소연. “이렇게 멋진 우리 아들을 어떻게 싫어할 수 있단 말인가.”

 어머니는 거만한 공직에 대한 젊은이들의 불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다음 달 출범할 중국 차기 지도부가 개혁문제로 고민이 많다고 한다. 거창한 정치와 경제개혁을 논하기 전에 잠깐만이라도 ‘페이청우라오’ 프로그램을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