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핼러윈데이 유감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정신병원의 환자 중에는 귀신과 대화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혼령을 만난다고 해서 꼭 비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에는 초상을 치른 초가집 지붕으로 혼령이 빠져나가는 장면이 나온다. 현실에서도 비몽사몽 중에 죽은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거나 길가·지하작업실·골방 등에서 귀신을 봤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뇌손상으로 의식이 나빠지면서 일종의 환각을 경험하는 섬망(delirium) 상태와 비슷한 임사체험(near death experience)을 하면서 죽은 사람을 만났다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사람도 오랫동안 죽었다 부활한 적은 없었으니 과연 죽은 다음에는 어떤 세계가 열릴 것이고, 귀신이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방법은 없다. 다만 귀신과 사후세계에 대한 관심은 인류가 죽음을 의식한 이후 시공간에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마음의 원형과 연결되었다는 점은 확실하다.

얼마 전 싸이와 빌보드 차트 1위를 놓고 경합했던 록밴드 마룬5의 마룬(maroon)이란 말은 자메이카 무당들이 귀신들과 대화할 때 쓰는 언어를 일컫는다. 모잠비크에는 내전으로 죽은 군인귀신인 감바(gamba)와 대화하는 무당들이 있고, 마다가스카르 근처의 섬 마요트(Mayotte)에는 인구 4분의 1이 영매(medium)가 되어 황홀경(trance)을 경험했다고 한다. 로아(loa)라는 신을 믿는 아이티의 부두(vodou)교, 인도네시아 발리의 산향(sanhyang) 의식 등 지구상에는 귀신과 대화하는 무당이나 일반인이 무수히 많다. 우리나라도 20세기 초반까지 땅의 신인 터주에게 뒤뜰이나 장독 놓아둔 곳에서 제사를 지내고, 뾰족한 짚 모양의 터주가리가 집집마다 있었다. 마당의 지신(地神) 혹은 지모(地母)에게는 음력 초하루와 열닷새에 술과 떡으로 고사를 지냈다. 부뚜막에는 조왕신, 우물에는 용신, 화장실에는 측신 혹은 부칠각시가 있다고 믿었다.

20세기 초반의 선교사들과 과학주의자들이 이를 미신이라 몰아붙인 탓인지 현재는 거의 사라지고 없는 풍속이다.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에는 어머니에게 마귀가 붙었다고 믿는 아들과, 이른바 예수귀신이 붙은 아들을 죽인 후 물속 용신에게 바친다며 자살하는 무당 어머니가 등장해 한국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며칠 있으면 핼러윈데이다. 할리우드 영향 때문인지 젊은이들이 핼러윈 의상을 입고 요란한 파티를 한다고 한다. 그리스도교 축제인 밸런타인데이가 초콜릿 파는 날로 변질된 것과 비슷하다. 본래 핼러윈데이란 켈트족의 민속 축제인 소우인(Samhain)과 기독교의 여러 성인을 기념하는 것이 합쳐진 것이다.

고대 아일랜드 등에서 10월 31일은 죽은 조상들을 추모하고 풍요로운 소출을 기원하는 새해 전야제였다. 미국의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대기근(Great famine) 동안 음식을 구걸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아이들이 사탕을 받아오는 Trick or treat 풍속도 더해졌다. 서양의 모방이 아닌, 우리 것이 녹아 있는 창조적 ‘한류’를 기대하는 마음 때문인지, 우리 것은 잊고 서양껍데기만 따라 하는 요즘 풍토가 사실은 좀 불편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