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경제 불쾌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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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때문만은 아니게 불쾌지수가 매우 높다. 한.일간 불쾌지수가 높고, 관언(官言).언언(言言) 사이의 불쾌지수 또한 높다.

난타전을 벌이는 '주적(主敵) 쳐부수기' 행태로 사회의 불쾌지수는 한껏 높아졌고, 정치의 불쾌지수는 사사건건 예나 지금이나 높다.

국민엔 고통 정권은 불쾌

경제에는 고통지수라는 것이 있다. 실업률.물가상승률을 합쳐 따져보는 것인데, 입장에 따라 고통지수도 되고 불쾌지수도 된다.

가령 가계.기업 입장에서는 지금처럼 경제가 어렵고 앞으로도 나아질 조짐이 별로 안보이면 고통지수가 높을 수밖에 없다. 반면 정부.정권처럼 경제 정책의 책임을 져야 하고, 경제가 잘 풀려야 선거.남북문제도 잘 풀어갈 수 있는 입장에서는 불쾌지수가 높아진다.

그리고 어느 정권에서든 이 고통지수.불쾌지수의 함수관계가 경제의 성패에 큰 영향을 미친다.

불쾌하다 하여 몇몇을 찍어 미워하면 경제의 고통이 더 커져 되레 불쾌지수가 올라가고, 고통지수를 다 함께 견뎌내자 하지 않고 적당히 넘어가거나 섣불리 낮추면 당대엔 그럭저럭 유쾌할지 모르나 다음 정권이 몹시 불쾌해진다.

정권의 경제에 대한 불쾌.유쾌 지수를 가장 가까이서 민감하게 느꼈던 청와대 경제수석 비서관들의 경험은 이를 잘 말해준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 시절 어느 경제 수석은 어렵사리 대통령을 설득한 적이 있었다. 기업이 지금 투자를 해도 몇년 뒤에 물건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지금 투자가 일어나야 정권을 넘겨줄 때 경제 성적이 좋아진다. 그러니 과거는 접어두고 아무 아무개 기업인을 만나셔야 한다 - .

다른 경제수석은 YS로부터 "이××" 소리를 들었다.

평소 자신의 소신을 속사포처럼 쏟아놓는 성격인 그는 대통령 앞에서도 직언을 서슴지 않다가 그만 험한 말을 들은 것이다.

아무튼 YS는 일단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었으나 자신의 분신처럼 무게를 실어준 경제수석이 없었고 경제를 우선 순위에 두지도 않았다.

결국 외환위기를 부르며 하나도 유쾌하지 않은 경제를 현 정권에 넘겨준 것과 무관치 않다.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라며 경제수석에게 힘을 실어주고 경제를 우선 순위에 두었던 전두환(全斗煥)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경제수석을 별로 바꾸지도 않았다.

어느 경제수석은 발령을 받고 처음 대통령과 마주 앉은 자리에서 두가지 '조언' 을 들었다. 다른 누구보다 예산실장을 당신 사람으로 만들어라.

국책연구기관의 장(長)들과도 또한 긴밀히 지내며 그들의 지혜를 잘 활용하라 - .

이후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거의 매번 다수(多數) 대 1의 외로운 논리를 펴야 했던 경제수석에게 全대통령은 대부분 쾌(快)히 힘을 실어주었다. 그는 결국 경제만큼은 대체로 유쾌한 상태로 다음 정권에 넘겨주었다.

지금의 경제는 다들 겪고 있다시피 유쾌하지가 않다. 경제 주체들의 고통지수가 높은 만큼 정권의 불쾌지수도 높을 것이다.

궁금한 것은 현 경제수석의 무게와 역할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고통지수를 근본적으로 낮추기 위해 쾌히 경제를 우선 순위에 두고 있는지, 아니면 불쾌한 낯빛을 어찌어찌 가려가면서 여전히 국정의 우선 순위는 딴 데에 두고 있는지.

'경제 우선' 이 불쾌지수 낮춰

한가지 더.

역대 경제수석은 정권이 바뀌면 으레 새 정권의 '밥' 이었다. 낱낱이 계좌 추적을 당하고 몇몇은 사법처리 대상이 됐다.

전(前)정권에 대한 불쾌지수가 높아서였는지는 모르겠으되 부정을 저지르지 않은 다음에야 정책 판단을 사법처리 대상으로 삼으면 결국 관료들은 엎드리고 국민의 고통지수만 올라간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이××" 소리를 들었던 경제수석은 그간 아리송한 죄목으로 수감돼 있다가 지난 주말에야 보석으로 나왔다. 이제 불구속 재판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사법이든 경제든 불쾌지수를 낮춰야 고통지수도 내려간다.

김수길 경제담당 에디터 sg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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