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상처받은 동심이 내지른 '현실고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고전을 갖고 있는 사회는 행복하다. 헷갈리는 후학들을 위한 기준점이 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 이유로 1977년에 첫 출간된 이오덕 선생의 아동문학 비평집 『시정신과 유희정신』(창작과 비평사) 을 가진 우리 사회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요즘같은 어린이 책들의 홍수와,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는 아동문학의 보편화 속에서 이오덕 평론집은 우리가 거듭 되비춰봐야 할 거울이다.

사는데 정신없는 어른들에게 이 땅의 어린이들이 과연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글 묶음집 『학대받는 아이들』은 분명 이오덕의 건강한 문학관을 모델로 하고 있다.

무엇보다 어른들 눈치 보지 않고 솔직하게 쓰고 표현하는 것이 글쓰기의 기본이자, 심리치료를 포함한 교육적 효과 역시 뛰어나다는 가르침 말이다.

"아빠가 재떨이를 갖다 돌라고 했다. 허리를 구부려 상 밑의 재떨이를 잡아 당겼다. 그런데 아빠가 괜히 '저 가시나 와 저 지랄빙 해 쌓노' 했다. 나는 그 순간 재떨이고 뭐고 다 팍 엎어버리고 싶었다. 그래도 나는 심부름은 하고 간다고 갖다 드렸다. 그런데 내가 입을 비쭉거리지도 않았는데 아빠가 '가시나 뭐 카노! 동생 수연이는 뭐라 캐도 뭐든지 잘 듣는다 아나! 니는 수연이 똥 처무거도 아깝다' 고 했다. " (1백95쪽, 4학년.여)

책은 응어리진 아이들의 경험을 담은 글 모음집이다. 사투리까지 포함한 속내의 드러냄, 어른에 대한 분노를 포함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고백들이다.

당혹감과 안쓰러움을 동시에 안겨주는 이 글은 경북지방에서 초등학생들을 지도해온 이호철(49.경북 청도 문명분교) 교사 제자들의 글이다.

전체 주제는 알록달록한 세계가 아니라, 이 땅 어린이들의 현실 고발이다.

무심코 저지른, 그러나 권위주의에 젖은 어들들의 행동 때문에 아이들이 얼마나 상처받고 있는지를 드러내고 있다. 책의 서문을 쓴 농사꾼 철학자 윤구병은 이렇게 적절하게 말한다.

"이 책을 모든 교사가 다 읽어야 한다. 아이들도 나에게 상처를 보여줌으로써, 그 아이의 상처를 어루만질 희망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러나 아이들의 고발은 충격적이다.

"엄마와 아빠가 싸우고 있었다. 아빠가 '이기 미쳤나' 하면서 엄마의 뺨을 때렸다. 엄마가 '한쪽도 마자 때리지, 와?' 했다. 아빠는 침을 퇴하며 이불을 마당에다 던졌다. 나는 아빠를 째려봤다. '정말 저게 우리 아빠가?' " (5학년.여) 매맞는 아이들, 부부갈등 속의 집안상황, 돈 걱정, 자위 등 성(性) 의 고민, 왕따 문제와 외모 콤플렉스 등 어린이들이 느낄 수 있는 거의 모든 게 글감이 됐다.

무엇보다 감탄스러운 것은 '자기 검열' 로부터 자유로운 환경을 만들어준 교사의 힘이다. 정직한 글쓰기의 힘을 믿는 저자인 이호철은 이 분야의 잘 알려진 교사.

그런 점에서 『일하는 아이들』등 고전적인 어린이 글 묶음집을 펴낸 이오덕의 뒤를 잇는 사람이다.

이호철은 『살아있는 글쓰기』 『공부는 왜 해야하노』등의 책을 펴낸 바 있다. 이런 교사들이 있어 한국의 교육이 살아 있다는 윤구병의 발언에 고개가 주억거려 진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