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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윤리와 법적 규제 [3]

중앙일보

입력

V. 법적인 규제와 네트의 主權

과연 현 시점에서 네트에 대한 규제와 개입은 불가피한가? 네트 통제주의자들의 입장과 네트 자유주의자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네트 완전독립론이나 네트 현실종속론은 둘 다 무리한 주장이다. 현실사회와 사이버스페이스간에 만리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세계와 사이버스페이스는 둘 다 현실을 구성하는 현실인 것이다. 여러 가지 부작용과 사회적 문제 때문에 네트에 대한 규제가 불가피하다면 누가 이를 규제할 것인가의 문제가 먼저 결정되어야 한다. 원칙적으로 네트의 규제는 네트의 주권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참여와 합의를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네트의 주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당연히 네트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앞으로 이를 사용할 사람들에게 있다. 그래서 네트를 규제할 법률이 불가피하게 만들어져야 한다면 법률 조항을 만드는 과정이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사회적 여론과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며, 사상과 표현의 자유나 집회와 결사의 자유 같은 네트의 기본권이 보호되어야 한다.

현재 악법으로 문제시되고 있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등에 관한 법률〉의 가장 큰 문제점은 법률 제정 과정이 매우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이와 더불어 법률 제정 과정의 졸속성과 部處이기주의도 엿보인다. 이 법안에는 프라이버시 보호에서 정통부 산하 각종 위원회의 조직과 구성에 이르기까지 네트워크와 관련된 온갖 案들이 마구 뒤섞여 있다. 프라이버시 보호라는 매우 중요한 조항에서 점잖게 시작한 법안은 갈수록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 청소년 보호라는 명목을 걸고 내용에 대한 검열과 개입을 정당화하는가 하면 정보통신부 산하 각종 규제 기관의 권한 강화를 나열하고 있다.

이토록 광범한 내용을 담고 있는 법안이 슬그머니 네트의 뒷문으로 들어온 것은 네티즌의 주권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이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국가 기관의 주도에 의한 인터넷 내용 규제가 이루어질 것이고, 그것은 네티즌의 주권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다.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한 규제가 불가피하다면 최소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규제를 하는가가 명확하게 밝혀져야 한다. 규제의 주체가 달라지면 규제의 방식과 내용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주도하는 법적 규제는 사회 공익을 대변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특정 집단의 이해를 차별적으로 반영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입과 통제를 위한 법안이 누구의 이해를 반영하는가도 밝혀져야 한다.

규제의 이유 또한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약하는 법률안의 경우 청소년 보호라는 명분 속에 숨어있는 의도가 밝혀져야 한다. 또한 전체 사용자를 위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일부 정보사업체의 이해를 숨기고 있을 경우도 많다. 규제의 대상 또한 중요하다. 인터넷 사용자 전체를 규제하는 것인지 사업자만 규제하는 것인지 아니면 특정 연령대의 집단을 규제하는 것인지에 따라 상당히 다른 문제들을 낳을 수 있다. 등급제라는 것이 특정 연령대를 겨냥하고 있지만 사실 그것이 미치는 효력은 단순히 청소년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규제의 방법 또한 네트의 특징을 고려할 경우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앞에서 레식의 논의를 중심으로 법률적인 규제와 윤리, 시장, 기술을 통한 규제 방식이 있음을 살펴보았다. 법률적인 규제는 가장 손쉽고 일률적이기는 하지만 네트의 특성과 잘 맞지 않는 구석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네트에 포르노물을 게재한 사람이나 기업에게 1년 이상의 징역과 1천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고 치자. 서울 개포동에서 사업체를 열고 서버로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던 김음란씨는 사법망의 감시를 피해 미국의 서버를 이용하여 자신의 사업을 계속할 수 있다. 글로벌化란 틀이 인터넷의 기본 골격을 구성하고 있고 국민국가의 제한적인 권력 때문에 이를 단위 국가의 법률로 통제한다는 데는 많은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 나라처럼 단일한 언어를 사용하고 상대적으로 지리적인 동일 공간에 밀집되어 존재하는 경우 국가의 통제와 감시는 상대적으로 수월할 수 있지만 멀티미디어 컨텐츠가 主를 이룰 경우 언어의 중요성은 훨씬 약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컨텐츠의 국제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VI. 사이버스페이스의 主權과 사이버 파워

사이버스페이스는 컴퓨터 커뮤니케이션Computer Mediated Communication, CMC을 사용하여 만들어진다. 그래서 접속하지 않는 한 사이버스페이스는 없다. 사이버스페이스의 기본적인 시민권은 접속에서부터 시작된다. 사이버스페이스의 주권은 사이버스페이스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과 앞으로 그것을 사용할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그것은 현실 권력을 그대로 옮겨놓는 것과는 다른 구조를 지닐 수밖에 없다. 사이버스페이스의 주권이 현실세계의 주권과 같지 않다는 말이다. 물론 현실세계의 권력관계가 사이버스페이스에도 반영되겠지만 일대일 대응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사이버스페이스와 현실세계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사이버스페이스의 공동체를 운영하고 서로 생각과 정을 나누는 주체는 네트의 시민들이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도 의무와 책임이 따라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네트가 채용한 수평적인 개방구조는 원칙적인 동등함을 부여한다. 그러나 평범한 동등함이란 범속한 평등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평등함과 더불어 상호성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상호성interoperability이란개인들이 서로에게 기여한다는 원칙이 실현될 때 이루어진다. 개체성과 상호성의 결합이라는 이상향은 ''따로, 그러나 함께''라는 새로운 생활윤리의 정착을 의미한다. 이러한 가치를 실현하는 주체가 네티즌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인터넷 사용자가 곧 네티즌과 동격으로 사용되지만 네티즌은 단순히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공동의 가치와 행동을 갖고 서로 나누는 공동체적인 규범을 가진 가치 지향적인 존재이다.

인터넷은 새로운 친교정신이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네트의 규범과 가치는 만남의 신선함과 상대에 대한 호기심과 예의와 배려가 살아 숨쉬는 새로운 친교 정신의 발현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네트에서 자생적인 가치와 규범이 싹틀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아야 한다.

네티즌은 독립과 공존이라는 이상을 지향한다. ''따로, 그러나 함께''라는 틀은 ''똑같이 있음''이라는 무조건적이고 형식적인 평등의 틀과는 다른 것이다. 이는 퍼블릭 액세스public access라는 주장 아래 네트의 평등주의로 고착되어서는 안됨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이 네트의 역동성에 통합되는 동시에 자신이 네트의 역동성을 만드는 기반이 되는 변증법적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막스 베버의 고전적인 권력 개념은 "다른 사람의 행위에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개연성"이다. 이러한 권력 개념은 조직의 위계구조를 설명하는 데 유효하다. 조직에서 형식적인 지도력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의도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지배할 권리와 책임이 있다는 설정이다. 이런 권력은 비대칭적이고 일방적이다. 실체적 권력은 지위나 폭력에 입각해 있기 때문에 힘의 행사는 불균등한 관계를 수반하고 지배와 피지배라는 불평등한 구조를 만들고 그것이 사회 전반에서 불평등한 결과를 가져온다. 권력은 ''잡는 것''으로서 권력을 행사하는 지위는 개인의 능력과 무관하게 그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힘을 부여한다.

그러나 권력의 ''출현적emergent'' 속성에 주목하면 네트에서 생겨나는 과거와는 다른 동적인 ''힘''과 ''권능강화''를 설명할 수 있다. 출현적 힘은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남을 통한 권력이거나 남과 함께 할 때 드러나는 ''힘''이다. 출현적 힘은 "상호 관계를 통하여 각 사람의 에너지, 자원, 힘, 권력의 동원을 의도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며, 수평적인 관계를 통해 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네트는 이런 힘을 만들어내는 기반으로 작용한다.

네트를 통해 만들어지는 출현적인 힘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법률적 강제보다 내재적인 합의를 통한 네트의 규제가 보다 더 효율적임을 알 수 있다. 네트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중요한 이슈를 끄집어내고, 그것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과 태도를 결집하고, 궁극적으로 정치과정에 그들의 입장과 생각을 반영하는 것, 이것이 인터넷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이를 위해서는 참여와 연대를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네트의 참여와 연대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회 전체 구성원이 네트에 접근하여access, 자신의 목소리voice를 내고, 서로 대화dialogue할 수 있는 세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이것이 ''민주적인 참여democratic participation''의 기본 조건이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표현의 자유와 연대는 인터넷이 채용하고 있는 ''열린 구조'' 덕분이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정부의 인터넷 규제는 인터넷을 ''닫힌 구조''의 囚人으로 만들 우려가 크다. 우리는 인류 역사 상 드물게 찾아온 새로운 자유의 매체를 통제와 감시의 지옥으로 전락하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백욱인 / 서울산업대학교 교수. 사회학
자료제공 : emerge새천년(http://emerge.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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