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골계와 해학이 깃든 산문집

중앙일보

입력

전북대 국문과 교수로 30여년간 재직해 온 김준영의 산문집 「잔잔한 웃음」(학고재)은 책 제목처럼 문장 사이사이에 녹아 있는 은근한 기지와 해학이 잔잔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산문집이다.

이 책에 실린 산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저자가 평생 연구하고 가르쳐 온 고전문학이나 국어와 관련된 글이고, 다른 하나는 저자의 생각과 삶의 단면이 드러나는 일상적인 글이다.

일부는 이전에 출간됐던 저자의 수필집 「옛일과 견주며」에서 되살린 것이고,나머지는 잡지 등에 발표했던 글을 모은 것이다.

저자는 익살을 부린다든지 남을 은근히 꼬집는 것은 기지와 민감에서 우러나는것으로 둔한 사람에게선 결코 볼 수 없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자주 언급하고 있는 우리 민요, 설화, 속담, 일화 등은 그 대부분이 해학과 기지가 넘친다는 사실로 미뤄볼 때 우리 민족은 기지가 넘치는 민족임에 틀림없다는 얘기다.

끓어오르는 욕망을 주체하지 못해 밤중에 기둥을 붙잡고 빙빙 돌다가 녹초가 되는 젊은 과부의 얘기라든가 술장사 3년에 는 것은 '궁둥이짓'밖에 없다는 어느 술집아낙의 얘기는 단순한 웃음을 넘어선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그 무엇인가가 있다.

'어느 쾌락주의자의 고전 이야기'라는 부제가 말해 주는 것처럼 저자는 자신이'술꾼'이면서 삶을 긍정하고 즐기는 쾌락주의자라고 고백한다.

어떤 힘든 상황에 부딪혀도 무작정 괴로워하기보다는 자신을 조용히 관조하는여유와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낙천적인 인생관이 글 곳곳에 묻어난다.

"예로부터 양생(養生)에는 정신적 안정이 제일이라 했다. 감정이 격화되어 노발대발하거나 근심하는 것처럼 건강에 해로운 일이 없고, 안락한 마음으로 유쾌히 지내는 것처럼 건강에 좋은 일이 없다는 교훈이다" 매일매일을 마치 전투하듯이 사는 현대인들에게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여유를잃지 않고 골계와 해학이 넘치는 삶을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은근한 기지를 이 책은새삼 일깨워 준다.

1920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1953년 성균관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김준영은 1956년부터 1985년까지 전북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는 같은 대학 명예교수로서 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299쪽. 1만원. (서울=연합뉴스) 정 열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