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보수 “기필코 단일화” vs 진보 “혁신교육 계승”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93호 07면

이상주 전 교육부총리(가운데) 등 보수 인사들이 19일 프레스센터에서 ‘좋은 교육감’ 후보 단일화 설명회를 열고 있다. 최정동 기자

12월 19일, 서울 시민은 두 장의 투표용지를 받는다. 한 장은 제18대 대통령 선출을 위해, 다른 한 장은 서울시교육감 재선거를 위해서다. 서울시교육감은 유치원 및 초·중·고교 2206곳, 학생 126만 명, 교원 8만 명을 관할하는 서울 교육의 수장이다. 대선과 겹친 올해엔 ‘사실상 대선 후보의 러닝메이트’라는 말도 돈다. 2010년 성공적인 단일화로 곽노현 전 교육감을 당선시켰던 진보 측은 “혁신교육 계승”을 외치며 세를 끌어모으고 있다. 당시 후보 난립으로 패배를 겪었던 보수 측도 ‘이번엔 뭉쳐야 한다’며 일찌감치 단일화에 착수했다. 하지만 진보·보수 양 진영 모두 판세를 흔들 만한 ‘스타급 후보’가 없다는 점이 단일화의 장애 요소로 꼽힌다. 저마다 서울교육을 살릴 적임자라며 출사표를 쓰고 있다.

달아오르는 12월 19일 서울시교육감 재선거

단일화 기구부터 단일화해야 할 상황
지난 7월 31일, 50여 개 보수 성향 시민단체들이 모여 ‘좋은 교육감 추대시민회의’(시민회의)를 발족했다. 곽 전 교육감에 대한 대법원 판결보다 두 달여 빨리 재선거 준비에 착수했다. 여기엔 쓰라린 패배의 기억이 작용했다. 2년 전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총 7명의 후보 중 보수 성향 6명은 전체 득표율의 65%를 차지했다. 하지만 승리는 34%를 득표한 곽 전 교육감이 가져갔다.

15일 서울 흥사단에서 열린 ‘민주진보 서울교육감 후보 추대위’에서 오성숙 ‘함께하는 교육시민모임’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19일 시민회의는 후보 단일화 기준과 절차를 발표했다. 24일까지 예비후보 접수를 받아 정책토론회를 거쳐 다음달 2일 단일 후보를 선출하겠다고 밝혔다. 진보 진영과는 달리 여론조사·투표 등을 배제하고 후보의 자질 검증을 통한 추대 형식을 선택했다. 정원식 전 국무총리, 이상훈 애국단체총연합 상임의장, 홍재철 한국기독교총연합회장 등 원로 11명이 후보 검증을 맡을 예정이다. 이날 이상주 상임 공동대표(전 교육인적자원부 장관)는 “2010년과 같은 일이 다시 생겨서는 안 된다. 이번만큼은 제대로 된 보수 단일 후보를 뽑아 꼭 당선되게 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시민회의가 밝힌 단일화 방식은 그러나 반발에 부딪쳤다. 이날 행사장에서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최명복 서울시의원 측의 김정욱 본부장은 “단일화 방식은 후보들끼리 정하는 거지 누가 뽑는 게 아니다” “원로들이 결정하겠다는 데 근거가 뭐냐”며 항의했다.

교육계 역시 시민단체 중심의 후보 단일화 움직임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 16일 국내 최대의 교원단체인 한국교총 등 교육계 인사들은 ‘선택 1219 올바른 교육감 추대를 위한 교육계 원로회의(원로회의)’를 출범시켰다. 원로회의의 관계자는 “교육감을 뽑는 선거에 교육계의 의견을 무시하고 교육계 밖의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것은 잘못이다. 교육계 의견이 한층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양분’으로 후보 단일화는 애초 의욕과 달리 제 속도를 못 내는 상황이다. 이름을 밝히기 꺼리는 한 후보는 “단일화 기구부터 단일화해야 할 코미디 같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면 어떤 후보도 단일화에 승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일화의 구심점이 될 유력한 후보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서울의 어느 교장은 “나오겠다는 사람은 많아도 딱히 찍을 사람은 없는 ‘풍요 속 빈곤’”이라고 말했다.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안양옥 교총 회장은 “단일화에 전념하겠다”며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했다.

자천타천으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후보만 10명이 넘는다. 교육과학기술부 출신인 이규석 전 학교교육지원 본부장과 이준순 전 교육복지국장(현 서울교총 회장)을 비롯해 김진성 공교육살리기국민연합 대표, 박장옥 양천고 교장, 송광용 전 서울교대 총장, 심은석 초중고 교장회 회장, 최명복 서울시의원, 홍후조 고려대 교수 등은 직·간접적으로 출마 의사를 밝힌 상태다.

2010년 선거에 출마했던 김영숙 전 덕성여중 교장, 남승희 전 서울시 교육기획관 등도 꾸준히 거론된다. 문용린 전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조벽 동국대 석좌교수 등도 물망에 올랐으나 본인들이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주목받는 인물은 이대영 서울시 부교육감이다. 곽 전 교육감의 수감 이후 권한대행 업무를 시작하면서 “학교에 혼란을 초래했던 정책을 정상화하겠다”고 선언했다. 학생인권조례, 혁신학교, 무상급식 확대 등 ‘곽노현식 혁신 교육’ 전반에 대한 수정 의사를 밝히고 있다. 공주사대 졸업 뒤 20년 동안 고교 교사로 재직했던 그는 현직 교사 출신으론 최초로 부교육감에 올랐다.

여당에선 박근혜 대선 후보의 ‘보완재’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서울시교육감 후보가 되길 희망한다. 박 캠프 측 관계자는 “박 후보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인물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캠프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후보는 ‘참신하고 개혁적인 이미지의 50대 초반 남성’이다.

선거법·지방교육자치법은 정당이 교육감 후보를 공천하는 것을 금지한다. 교육감 후보 역시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힐 수 없다. 하지만 지난 선거에서 ‘정책 공조’ ‘정책 연대’ 등의 형태로 보수는 새누리당, 진보는 민주통합당 등과 연대했다.

문재인·안철수 캠프 속내 몰라 걱정도
“곽노현 교육감은 감옥에 가뒀지만 아이들의 행복한 교육을 가둘 수는 없다. 다시 한번 떨쳐 일어나려 한다. 곽노현을 탄생시켰던 힘과 열정, 의지로, 혁신교육을 지켜낼 것이다.”

15일 ‘2012 민주진보진영 서울교육감 추대위원회(추대위)’ 발족에 따른 기자회견장에서 김옥성 공동대표(서울교육희망네트워크 운영위원장)가 던진 인사말이다. 이처럼 진보단체들은 2010년 단일화로 일군 승리를 올해 선거에서도 재연하겠다는 공감대를 지니고 있다.

지난달 28일 진보단체들은 교육감 재선거를 준비하는 첫 모임을 열었다. 후보매수죄로 대법원의 유죄 판결을 받은 곽 전 교육감이 구속 수감된 당일이다. 7월부터 단일화를 논의했던 보수에 비하면 더딘 출발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서운 속도를 내고 있다. 19일 현재 민주노총서울본부,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민교협), 참교육학부모회, 한국진보연대, 흥사단교육운동본부 등 100여 개 단체가 참여했다. 경선 규칙, 향후 일정 등도 확정한 상태다. 시민 참여경선과 여론조사를 일대일로 반영해 단일 후보를 선출하기로 했다. 18일부터 추대 회원 모집에 들어갔다. 25일까지 후보 등록을 받아 다음달 4일 단일 후보를 선출할 계획이다.

19일까지 단일 후보 경선에 출마 의사를 밝힌 인사는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이부영 전 전교조 위원장 등이다. 5공 시절 교사 600여 명과 함께 교육민주화선언을 주도했던 이수호씨는 전교조 결성을 주도하다 해직된 뒤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민주노총 사무총장, 전교조 위원장 등을 거쳤다. 2004년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선출된 그는 민주노총의 노·사·정 대화 복귀를 시도하다가 강경파의 반발과 내분 사태가 이어지자 자진 사퇴했다.

이부영씨 역시 평교사 출신으로 초기 전교조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전교조 서울지부장(1990년) 등을 거쳐 전교조가 합법화된 이후 첫 위원장(1999년)으로 활동했다. 한때 교사로 복직했던 그는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 교육위원으로 당선됐다. 기자와의 통화에서 두 사람 모두 “일부에 그쳤던 혁신 교육을 서울 전역으로 확대하겠다”(이부영), “혁신학교를 계승, 발전시키겠다”(이수호)며 곽 전 교육감의 정책을 이어갈 뜻을 분명히 했다.

추대위 관계자는 “이들 외 두 명 정도가 더 경선 후보로 등록할 듯하다”고 밝혔다. 한때 자천타천으로 거론됐던 최홍이 서울시의회 교육위원장, 이수일 전 전교조 위원장, 송순재 서울교육연수원장, 조희연 민교협 상임의장(성공회대 교수) 등은 현재로선 출마가 불확실하다.

이수호·이부영 후보 등은 참여 단체들로부터는 비교적 우호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본선 경쟁력’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교육단체 관계자는 “이념적 선명성은 확실하나 대중 인지도·이미지를 고려한 득표력 측면에서도 최선의 후보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진보 단일 후보와 정책공조에 나설 민주통합당도 이 점을 걱정한다. 문재인 캠프의 한 관계자는 “교육감 후보가 유권자에게 호소력이 커야 실질적인 ‘러닝메이트 효과’가 있을 텐데 그럴 후보가 나올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점 때문에 야권 및 진보 진영 내에서는 ‘스타급 교육감 후보를 영입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조국 서울대 교수,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등이 거론됐던 이유다. 하지만 조 교수는 SNS에 ‘시교육감은 교사 출신이 되는 것이 맞다’는 글을 남기며 불출마 의사를 밝힌 상태다.

추대위는 민주통합당이나 안철수 캠프가 단일 후보 선출 이후 제3의 후보를 지지할지도 몰라 내심 걱정하고 있다. 2010년과 달리 단 한번에 단일 후보를 결정하는 ‘원샷’ 방식을 도입한 것도 이 같은 우려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장은숙 참교육학부모회장은 18일 “정당이 추천하는 사람도 이번에 함께 (경선) 해야 한다. 밀 만한 후보가 있으면 빨리 나오라고 설득하고 있다”고 밝혔다.

후보 중엔 진보·보수 양 진영의 단일화 논의에서 벗어나 있는 이도 있다. 지난 9일 선관위에 교육감 예비후보로는 최초로 등록했던 이인규(53)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 상임대표는 초기 전교조에 몸담았으나 이후 시민단체를 설립해 독자적인 활동을 폈다. 이 대표는 15일 “진영 논리에 따라 적합한 후보자를 가려내겠다는 발상은 교육을 정치에 종속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양 진영을 모두 비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