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言堂<일언당>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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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호 31면

“말은 입에 반쯤만 내놓고 반 마디 정도는 남겨 두어라. 이치는 열 가지 모두 내 의견이 옳다 해도 하나쯤은 남에게 양보하라(話到口邊留半句, 理有十分讓一著).”

漢字, 세상을 말하다

예부터 전해오는 지혜로운 문장들을 모아 편찬한 중국의 명언모음집인 증광석시현문(增廣昔時賢文)에 나오는 말이다. 명심보감(明心寶監)의 “사람을 만나면 3할만 이야기해야지, 자기가 가진 한 조각 마음마저 다 털어놓아서는 안 된다(逢人且說三分話, 未可全抛一片心)”라는 구절과 통한다. 자신의 말은 삼가고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라는 열린 리더십을 강조한 말이다.

유래가 깊고 콧대가 높은 중국 상점 중에 ‘일언당(一言堂)’이란 현판을 단 가게가 많다. 정찰제 상점이란 의미다. 흥정을 사절한다는 뜻으로 가격표에 ‘불이가(不二價)’라 붙이기도 한다. 주인이 상품에 자존심을 나타내는 방법이다.

문제는 타협을 모르는 ‘일언당’ 정치가다. 한국에는 고집불통으로 유명한 평안도 벽동(碧潼)과 창성(昌城)의 소[牛]를 일컫던 ‘벽창우(碧昌牛)’에서 나온 벽창호라는 말이 있다. ‘일언당’의 한국 버전인 셈이다. 보통 조직의 1인자는 자신과 상반되는 의견을 듣기 싫어한다.

중국이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한 이유가 ‘일언당’ 정치의 폐해를 혹독하게 겪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공산당 총서기와 정치국 상무위원은 상하관계가 아니다. 후진타오(胡錦濤) 총서기도 ‘동급자 중 첫 번째’에 불과하다. 아홉 명으로 이뤄진 현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한 표를 행사할 뿐이다. ‘일언당’의 반대는 ‘군언당(群言堂)’이다. 널리 여론을 수렴하는 민주적인 일처리 방식을 일컫는다. 한국은 민주화에 성공했지만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 ‘일언당’ 정치에 익숙하다. 최근 불거진 한 대선 후보의 불통 논란도 같은 맥락이다.

현문에는 이런 말들도 나온다. “많은 사람이 모두 의심한다고 해서 한 사람의 독특한 견해를 막는 일이 없도록 하라. 자신의 뜻에 맡겨 임의대로 남의 말을 없애는 일이 없도록 하라(勿因群疑而阻獨見, 勿任己意而廢人言).” “한마디 말을 참고, 한 가지 노함을 잠재워라. 하나의 집착에서 관대하게 하고, 한 걸음 물러날 줄 알아라(忍一言, 息一怒, 饒一着, 退一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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