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역사 알고 수리 안 했다” 고이 돌아온 화성돈 공사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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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DC의 주미 대한제국공사관의 현재 모습.

펜을 든 김찬 문화재청장의 손이 보일 듯 말 듯 떨렸다. 그 사이 타임머신은 1891년과 1910년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2012년으로 되돌아왔다.
 워싱턴 로건 서클 15번지. 일본·청나라·러시아 간 패권 다툼의 틈바구니에서 조선의 운명을 미국에 의지하려 했던 고종이 외교 활동 공간으로 쓰기 위해 내탕금(황실의 비자금) 2만5000달러에 사들였던 ‘대조선주차 미국 화성돈 공사관(大朝鮮駐箚 美國華盛頓 公使館)’. 1910년 을사늑약으로 고종의 꿈이 스러진 뒤 단돈 5달러에 일본에 빼앗긴 건물. 그 뒤 미국인의 손에 넘어간 건물.

1903년에 촬영한 공사관 내부. 태극기가 정당(正堂) 내벽을 휘장처럼 감싸고 있다. 사무실 안에는 샹들리에와 태극 문양의 소파가 있다.

 18일 오후(현지시간) 워싱턴 내셔널프레스클럽 13층에서 열린 대한제국공사관 매입 서명식은 이 건물의 슬픈 역사를 아는 참석자들에겐 가슴 떨리는 순간이었다. 계약서에 서명을 마친 김 청장과 원소유주인 티머시 젠킨스가 악수를 하자 행사 참석자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102년 만에 공사관은 원주인의 품으로 돌아왔다. 공사관은 대한민국 국유재산으로 편입되며, 매입대금 350만 달러는 문화재보고기금법이 규정한 긴급매입비에서 지급된다.

 김 청장은 “서명식을 한 내셔널프레스빌딩이 1888년 1월 박정양 초대 주미공사가 머물렀던 에비트하우스 호텔이 있던 자리여서 더욱 뜻깊다”고 말했다.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은 “200만 미주 한인의 모국 사랑이 합쳐진 결과”라고 했다. 1977년에 건물을 매입해 35년간 살아온 젠킨스는 “로건 서클 주변의 50여 채 건물 중에서 내부가 그대로 보존된 건 2채뿐”이라며 “한국이 일본에 강탈당했다는 역사를 알고는 내부 수리를 안 하고 원형을 보존하려 애썼다”고 말했다. 그는 “원주인에게 돌려주게 돼 기쁘다”며 “한국과 미국이 서로를 이해하는 역사적 교두보로 활용됐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워싱턴의 대한제국공사관 건물 매입 계약을 마친 김찬 문화재청장(오른쪽 둘째)과 티머시 젠킨스가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이 박수를 치는 가운데 악수하고 있다. 왼쪽은 공동 소유자였던 부인 로레타 젠킨스.

 매입 서명식이 끝난 뒤 한미경제연구소(KEI)에선 활용방안 등을 둘러싼 세미나가 열렸다. 워싱턴 공사관 건물의 역사적 가치를 2005년 『살아 숨쉬는 미국 역사』란 책과 강연·칼럼 등을 통해 알려온 박보균 한국신문편집인협회장(중앙일보 대기자)은 “공사관은 동북아 세력 다툼에서 자주독립을 추구해 온 고종이 마련한 일종의 외교 전초기지”라며 “공사관이 100년 넘도록 기적적으로 남아 있는 건 선조들이 후손들에게 부국강병을 당부하는 일종의 교훈”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종헌 배재대 교수는 “로건 서클 역사 보존을 위한 미국의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옆집인 13번가 1502번지도 대한제국 공사관으로 활용됐다는 기록이 있다”며 “추가 조사를 거쳐 이 집도 매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젠킨스도 옆집이 대한제국 공사관으로 사용됐었다고 확인했다”고 말했다.

 김정동 목원대 교수는 “정부는 이 건물을 과거 형태로 재현한 뒤 한·미 양국의 역사자료 파일을 보관하는 일종의 기록관인 ‘코암 아카이브(Korea-America Archive)’로 활용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김 문화재청장은 “우선 건물을 보존·복원·복구하는 게 급선무”라며 “활용방안은 시간을 두고 공론화를 통해 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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