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인간에 입양된 침팬지, 수화를 하고 커피도 즐겼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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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님 침스키
엘리자베스 헤스 지음
장호연 옮김, 백년후
448쪽, 2만2000원

1973년생. 이름 님 침스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레몬 파이. 커피와 담배를 즐기고, 잡지를 뒤적이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어렸을 때는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나 일찍 집을 떠나 여러 곳을 전전하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삶을 마감했다.

 한때 미국에서 스타 못잖은 인기를 누리며 방송과 신문을 떠들썩하게 장식했던 한 침팬지의 이야기다. 인간과 가장 닮았다는 이유로 실험용 동물로 선택됐던 님 침스키가 주인공이다. 침팬지의 전기(傳記)라니, 사람 전기조차 충분히 쓰여지지 않는 한국 문화에서 보면 굉장히 낯설게 여겨지지만,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책이 나오는 출판문화가 부럽게 여겨질 만큼 겹겹이 풍부한 일화를 담고 있다.

 39년 전, 미국 컬럼비아대 심리학과 허버트 테라스 교수는 유인원 언어 실험 ‘프로젝트 님’을 구상했다. ‘언어는 인간에게만 내재된 능력’이라고 주장한 MIT의 유명한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에 도전하기 위한 실험이었다. 그는 침팬지에게 인간과 똑같이 언어를 가르쳐 촘스키의 이론이 틀렸음을 입증하려 했다. 그 대상으로 선택돼 태어난 지 열흘 만에 어미로부터 떨어져 한 가정으로 입양된 침팬지가 바로 님 침스키. 테라스 교수가 침팬지에게 노엄 촘스키와 닮은 이름을 붙인 것이다.

침팬지 님 침스키(1973~2000)가 수화로 ‘고양이’라고 말하고 있다. 님은 인간처럼 양육됐으나 나중에 보호시설을 떠돌아다니다 생을 마감했다. [사진 백년후]

 님은 뉴욕의 라파지 가족에게 입양돼 인간처럼 길러졌다. 식탁에 앉아 사람들과 똑같이 식사하고, 침대에서 자고, 어휘를 습득하고, 수화를 배웠다. 님은 자신을 사람이라 여겼다. 사람과 침팬지 사진을 섞어두면 자신의 사진을 사람 사진 쪽으로 분류했다.

 님은 때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그의 ‘자제를 모르는’ 행동 때문에 라파지 집안은 갈수록 엉망이 됐다. 집안 물건을 헝클어뜨리고 깨는 것은 물론 가족을 물기도 했다. 님은 세 살이 되던 해 라파지 가족 곁을 떠났다.

 이어 님은 델라필드의 한 별장으로 옮겨져 대학원생·대학생들로 이뤄진 팀원들의 보호를 받았지만, 그의 야생성과 연구비 확보 문제에 부딪혀 ‘님 프로젝트’는 4년 만에 막을 내렸다.

 실험이 끝나자 님은 우리에 갇혀 지내야 하는 사육 침팬지 신세가 됐다. 오클라호마대 영장류 연구소를 거쳐 심지어 백신 개발을 위한 생체 실험용으로 뉴욕대 영장류약물외과실험연구소에 팔아 넘겨지기도 했다. 결국 사람들의 시위와 항의 덕분에 구출돼 동물보호소에서 지내다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책은 논픽션, 그것도 잘 쓰여진 전기가 어떤 흡인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님 침스키의 파란만장한 삶뿐만 아니라 한 마리 실험용 침팬지와 얽혔던 많은 사람들 이야기를 매우 세밀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소설처럼 술술 읽히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영장류 연구와 실험의 역사, 이를 둘러싼 과학자들간의 경쟁과 도전, 질투와 반목은 물론 동물과 동물 실험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살펴볼 수 있다. 예컨대 님 프로젝트는 후에 ‘침팬지의 장기적인 복지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혹독한 비판을 면치 못했다.

 이 책은 동물 권리와 복지라는 화두를 던지는 책으로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동물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미묘하고 다양한 관계와 심리를 빼어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여느 평전에 못지 않는 소중한 기록으로 남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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